서울에서 쉬지 않고 4시간 반을 달려 신안군 자은도에 도착했다. 천사대교가 작년에 개통되어 배 없이도 갈 수 있다. 이제 현지 정보를 수집할 차례, 주유소에서 등유를 채우며 멋진 해변이 어디 있냐고 주인장에게 물었다. '여기 다 좋지.' 슈퍼에서 돼지고기와 잎새주를 사면서 신비로운 해변을 아시냐 물었는데, 계산원이 관광지도를 건네주며 말한다. '둔장해변으로 가세요.' 쏜살같이 달려갔으나 찾을 수 없었다. 믿었던 카카오 네비는 엉뚱한 장소를 안내하고 3G 신호 감도마저 약해 스마트폰 검색도 어려웠다. 차에 달린 네비게이터 켤 생각을 못함. 헤맴을 거듭한 끝에 포기하고 관광지도에 큼직하게 인쇄된 백길해변으로 향했으나, 유원지에서 흔히 보는 평상이 점령한 그저그런 해수욕장이다. 해는 저물어가고 마음은 조급해진..
명절 연휴 ‘사회와 거리두기' 주제의 자린고비 여행을 떠나는데 목표는 다음과 같다. 여행과 방역을 동시에 후천성여행결핍증을 치료하되 타인과의 접촉을 요리저리 피해 그림자처럼 다녀온다. 긴 일정이니 멀리 가자 국토 남반부의 섬을 탐험하고 신비스러운 해변을 찾는다. 이 구역 자린고비는 나다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를 포함해 24만원(4만x6일) 이내로 사용한다. 내가 굴비고 굴비가 나인지 알 수 없는 몰아일체의 세계 ----- 절 취 선 ----- 이용객이 밀집한 난민촌 같은 캠핑장이 끔찍해 주로 공중화장실이 있는 공원이나 노지를 찾아 다녔는데, 캠핑과 차박이 코로나 시대 탈출구로 각광받으면서 내 서식지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인적이 드문 장소로 가기 위해 휴대용 변기를 장만했는데, 응가에 특수 고안된 효소를 ..
코펠은 야외에서 밥을 지어 먹을 때 사용하는 조립식 취사도구로, 독일말 코허(Kocher, 조리도구 또는 요리)에서 비롯되었다. 영미권의 Cooker와 같은 말로 일본에서는 곳헤루(コッヘル)로 불리다가 우리나라에 와서 코펠로 굳어진 것으로 본다. 가정용 취사도구와 달리 가볍고 차곡차곡 포개 수납되어 부피를 조금 차지하는 것이 코펠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콜맨 스노우피크 스탠리 MSR 등 쟁쟁한 실력가들이 즐비한 아웃도어 용품 시장에서, 국산 '백마'가 경량 코펠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품목과 구성이 4차원 수준으로 복잡해 이름만 봐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왕초 언니 밥통 왕초 밥통 JGR 언니 밥통 왕초 언니 밸브 밥통 JGR 삼겹살 불판 왕초 ..
생활비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만수르 아니어도 누구든 실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추구한다. 캠핑 짐을 트렁크에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리를 살피다 어느 공원 주차장 옆에 자리 잡았다. 주말을 여기서 지내야지. 서울 신당동에서 금요일 17시에 출발해 1시간 걸렸으니 접근성도 용이하고, 덤으로 깨끗한 공중화장실도 있다. 좁은 텐트라 거실 인테리어는 촘촘히 일렬로 두 평만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왼쪽부터 가스레인지 식기보관통 식수대 냉장고 무선 인터넷과 블루투스 스피커, 노트북이 제공되는 침실. 야전 침대 위에 백패킹용 에어 매트리스를 올리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깔고 경량 덕다운 담요를 덮는다. 난방과 함께 서큘레이터로 공기를 순환시키기 때문에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실내 온도는 25도..
거의 두 달 만에 도착한 국제 우편물 우크라이나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서울 신당동까지 왔다. 가지런히 붙은 우표가 정겹다. 70~80년대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 소련제 방독면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 모델이다. 곳곳에 묻어있는 파우더를 중성세제로 닦고 꼼꼼히 살펴본다. 가스 마스크, 필터, 수납 가방, 김서림 방지 시트통으로 구성되며, 정화통의 사양은 NBC(핵, 생물무기, 화학무기) 방호기능을 2시간 유지하도록 되어있는데, 유효 수명 10년이 한참 지났지만 우리 집은 화재 발생 시 1분 내로 대피가 가능한 구조라 큰 무리는 없겠다. 이베이나 아마존닷컴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새 정화통을 구할 수도 있다.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에 노출되면 15초 만에 정신을 잃고 몇 분 만에 사망에 이..
더블 블랙 다이아몬드 사의 패커블 다운 담요(Packable Down Throw)는 경량 패딩 한 벌에 필적하는 700 필 파워 다운(솜털 80%, 깃털 20%)이 충진되어 있고, 펼치면 152 * 177cm로 성인이 편안하게 덮고 잘 수 있다. 사진은 1/4 크기로 접어놓은 상태인데, 함께 제공되는 파우치에 넣으면 캠핑용 베개 크기로 작아져 수납성이 좋다. 450g 이소 가스통과 크기를 비교하면 이렇다. 코스트코에서 700 필 파워 다운 담요를 2만 원 대에 팔길래 2개를 집어왔다가, 집에서 한번 덮어보고 다시 방문해 3개를 더 사 왔다. 워낙 가벼워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아 딸내미가 말하길 '신문지 덮고 자는 기분'이란다. 경량 패딩처럼 의외로 따뜻해서 침낭 대신 덮고 잘 때가 많다. 3계절용으로 사용..
3.6 x 3.6 미터 규격의 휴양림 데크에 DOD 파이어 베이스 텐트를 올릴 수 있을까? 도면을 그려 겹쳐 보니 데크에 그라운드시트만 겨우 올라간다. 텐트가 그라운드시트보다 크기 때문에 폴대를 포함해 텐트 구조물 일부가 데크 밖으로 돌출되겠구나. ㄷ자 모양의 펜스만 없었어도 좋았을 텐데 2% 부족한 위기 상황 ~ __~ 붉은 원으로 표시한 꼭짓점 3개가 문제인데, 튀어나온 부분은 지지대를 세워 어떻게든 해결하기로 하고 각목을 챙겨 청태산 휴양림으로 출발했다. 실패할 것에 대비해 플랜 B로 여분의 텐트와 타프(MSR 파파허바 + 갤럭시 윙 타프)도 가져 갔다. 레이저 측정기로 데크를 재어보니 3.6 x 3.6 아니고 3.6 x 4.2 미터로 홈페이지 상의 재원보다 크다. 오옷 이런 횡재가 있나? 그럼에도..
강원도 횡성군과 평창군 경계에 해발 1200m의 청태산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강릉을 가다가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아름다운 산세에 반하고 큰 바위에 놀라 청태산(靑太山)이라고 명명해 지금에 이른다. 아름드리 잣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숲속에 조성된 캠핑장은 캠퍼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선착순 + 추첨제로 운영되는데 경쟁이 치열해, 예약에 성공하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한다. 가로 세로 3.6m 규격의 아담한 데크를 제공해 큰 텐트는 설치할 수 없다. 갤럭시 윙 타프 아래에 주방을 차리고, MSR 파파허바를 침실로 설정하는 한편, 데크 왼쪽 자투리땅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프로젝터와 스크린으로 간이 극장을 꾸몄다. 전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럴 때 파워뱅크가 요긴하다. 적막한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