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창문을 바라보다가 딸내미와 동시에 '우와' 소리를 지르며 카메라를 들고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하늘에서 우주쇼가 한참이다. 이웃집이 신비스럽고 거리 풍경은 그대로 윈도우즈 바탕화면에 벽지로 발라도 되겠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옛 애인들을 피해 북쪽으로 동현아 동현아 무작정 외쳤다. 노을을 보면 생각나는 이름을 불러보자. 동현아 = 동대문현대시티아울렛 (- ㅅ-)a 신당동 하늘을 떠난 노을이 카자흐스탄을 지나 지금쯤 아부다비 상공을 항해 날고 있겠구나. 붉게 물든 페르시아만을 바라보면서 누구는 턱을 괴고 상념에 잠기고 누구는 웃고 박수치고 좋아라 하겠지. 언젠가 내 시간이 다해 지구별을 떠날 때 그립지 않도록 틈틈이 하늘을 보겠어.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검찰의 부당한 수사와 언론의 끈질긴 공격, 정치적 탄압에 죽음으로 항거한지 11주년이 되는 날이다. 다음은 2009년 5월 23일 대한문 앞 상황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경찰은 시민들이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는 것을 방해하고, 차벽으로 막아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했다. 경찰 버스 안에서 캠코더 녹화가 이뤄지는 것을 발견한 시민들이 신문지로 막고 있고, 경찰이 이를 피해 더 높은 창으로 이동해 촬영 중이다. 빈소를 막은 경찰 버스에 조문객들이 국화를 걸었다. 누군가는 영정을, 누군가는 탁자와 돗자리를, 누군가는 양초와 종이컵, 과일을 들고 왔다. 시민 분향소가 모습을 갖췄다. 호외 신문 사진으로 영정을 세우면 누군가는 국화꽃을 놓았다. 촛불이 바람에 ..
오랜 세월 기와를 한 장씩 쌓아 올렸을 자리에는 이제 기와 모양의 연질 플라스틱 패널이 올라간다. 그러나 백년이 흘러도 건물을 완성시키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의 땀이다. 한 줄씩 뻗어가는 지붕을 보며 노동의 값진 의미를 되새긴다. 1920년 근대 여성운동의 선구자 차미리사가 주축이 된 조선여자교육협회에서 야학을 열어 20명의 여성을 가르친 데서 비롯되어 근화여학교가 설립되었다. 1928년 '근화'가 무궁화를 상징한다는 일제의 시비에 따라 교명은 '덕성'으로 변경되는데, 한마디로 '말 잘 들으라'는 뜻이었다. 근화여학교는 이렇게 자기 이름을 잃고 덕성여자실업학교로 바뀌었다가 오늘날의 덕성여자고등학교가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구관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1941년도에 지어졌다. 할머니 세대의 학창 시절 추억을 ..
아버지: 이름 지었어? 아들: 고심 중입니다. 아버지: 좋은 스님이 계신데 아들: 아범인 제가 우리말로... 아버지: 꼭 우리말일 필요 있을까? 아들: 네네 꼭 우리말. 아버지: 아직도 안 정했냐? 아들: 그게 고르기가... 아버지: 출생신고 벌금 나올라. 스님께 다녀오마. 아들: 우어어 이리하여 강원도에서 수행하는 고승께서 이름을 지어주시게 된다. 참비단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진실 윤(允), 비단 나(羅) 아버지: 옳거니. 한자로 允羅 아들: 옳거니. 우리말로 윤나 그리하여 윤나가 되었다. 둘째 작명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https://macintoy.tistory.com/54
영국이는 금호동에 나는 신당동에 산다. 서로 알고 지낸 지 12년쯤 되었다. 누군가에게 날 소개할 때면 꼭 나를 '아랫동네에 사는 친구'라 말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내가 아랫동네에 사는 게 아니라 네가 산동네에 사는 것'이라고 바로잡는다. 자기는 윗동네 살고 나는 아랫동네 산다는 프레임, 12년째 같은 수법에 당하고 있다. 사진첩을 들여다보는데, 오호 십 년 전 노래방에서 찍은 사진이다. 내가 여기도 갔구나. 함량 미달이지만 나름 기타리스트로서 음악을 진지하게 임할 때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노래방은 기피하는 편이다. 어쩌다 끌려 들어가면 마이크를 잡는 대신, 구석에 앉아 사진을 찍는 게 더 즐겁다. 영국이가 어쩌면 공옥진 여사의 계보를 잇는 우리 시대 춤꾼은 아니었을까? 이 사진이 굴욕샷인지 예술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