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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기와를 한 장씩 쌓아 올렸을 자리에는 이제 기와 모양의 연질 플라스틱 패널이 올라간다. 그러나 백년이 흘러도 건물을 완성시키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의 땀이다. 한 줄씩 뻗어가는 지붕을 보며 노동의 값진 의미를 되새긴다.

1920년 근대 여성운동의 선구자 차미리사가 주축이 된 조선여자교육협회에서 야학을 열어 20명의 여성을 가르친 데서 비롯되어 근화여학교가 설립되었다. 1928년 '근화'가 무궁화를 상징한다는 일제의 시비에 따라 교명은 '덕성'으로 변경되는데, 한마디로 '말 잘 들으라'는 뜻이었다. 근화여학교는 이렇게 자기 이름을 잃고 덕성여자실업학교로 바뀌었다가 오늘날의 덕성여자고등학교가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구관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1941년도에 지어졌다. 할머니 세대의 학창 시절 추억을 간직한 귀부인 같은 건물이 오랫동안 자리에 남아 여성교육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차미리사의 후예들을 배출해주길 바라본다. 일제에 빼앗긴 이름도 되찾아오면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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