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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2019년 5월 16일자 <5·18 유공자 하연호 씨 “당시 광주상황 전주에 알리려 노력”> 기사에는 5·18 국가유공자 하연호 씨가 39년 전 광주항쟁을 증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3525&sc_section_code=S1N8

그해 5월 16일 전주 풍남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사진전에서 하 씨는 1980년 5월의 기억을 꺼냈다. 그는 5월 18일 광주의 상황을 접한 뒤 김제에서 야학을 함께 운영하던 동료 교사들과 광주로 향했다.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서 광주의 현실을 전주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가 포위됐다는 소식에 길은 막혔다. 그때 순창을 거쳐 전주로 넘어온 김현장 씨에게서 광주 상황을 담은 유인물을 건네받았다. 하 씨는 밤과 새벽을 이용해 전주 시내를 돌며 집집마다 유인물을 뿌렸다.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뿌린 유인물만 수만 장에 이른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는 전주신흥고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도록 뒤에서 도운 일도 털어놓았다.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바깥에는 이미 장갑차와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결국 하 씨는 5월 27일 전주경찰서로 연행됐고, 지하에서 보름 가까이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치아와 무릎, 어깨 등 온몸에 깊은 상처가 남았다.

하 씨는 5·18을 둘러싼 왜곡과 망언이 반복될 때마다 “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낀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5·18 유공자들이 연금 등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는 오해도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실제 처우와 거리가 먼 편견이 유공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6년, 하연호 씨는 어디에 있는가.

통일뉴스 5월 4일자에 실린 이재봉 원광대 명예교수의 기고 <감옥에서 온 편지>는 그의 현재를 전한다.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403

 

감옥에서 온 편지 - 통일뉴스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지난주 감옥에 있는 하연호 선생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전주 지역에서 오랫동안 농민운동과 통일평화운동을 벌이다 윤석열 정권 때 ‘간

www.tongilnews.com

이 교수는 전주 지역에서 오랫동안 농민운동과 통일평화운동을 해온 선배 시민운동가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소개했다. 그 선배가 바로 5·18 국가유공자 하연호 씨다. 그는 군산교도소에서 전주교도소로 옮겨져 독방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농민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과 북의 농민들이 만나 통일시대의 농업을 이야기하던 자리였다. 하 씨는 그곳에서 만난 해외 동포와 이후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고, 농사짓는 사람들의 일상을 나눴다고 한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몇 차례 만남도 있었다. 분단선 밖에서 해외 동포를 만난 일이 과연 감옥으로 이어질 만큼 중대한 죄인가.

국정원은 그 만남과 연락을 ‘북한 공작원’과의 회합, 통신, 첩보 교환으로 판단했다. 하 씨와 시민사회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나, 2심은 일부 혐의를 추가로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끝내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1980년 국가폭력의 피해자였던 하연호 씨는, 40여 년이 지나 다시 국가권력의 처벌 대상이 됐다. 국가는 이번에도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하연호 선생이 누구인가? 1950년대 김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야학을 시작했고, 교사로 일하던 시절 유신 반대 활동으로 해직됐으며, 이후 평생을 농민과 노동자, 소외된 이웃의 권리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살아온 분이다. 그런 그가 일흔을 넘긴 나이에 병든 몸으로 독방에 갇혀 있다.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물은 바 있다. 3·1운동, 5·18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을 이어온 민(民)의 힘은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일 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12·3 비상계엄 사태 앞에서도 주권자들은 민주주의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런 시대에 5·18 국가유공자가 5월 18일을 감옥에서 맞는 현실은 참담하다. 국가는 그의 삶을 기려야 마땅하다. 하연호 선생의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주권자의 양심과 사상을 억누르고 통일을 가로막는지 보여준다.

올해도 광주의 5월은 돌아온다. 망월동 묘역에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산 자들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부를 것이다. 하연호 선생도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한다. 전북을 비롯한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그의 가석방을 촉구하는 탄원이 이어지고 있다. 아래 링크에서 서명에 동참할 수 있다. 그를 홀로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북개헌운동본부 하연호 공동상임대표 가석방 촉구 탄원서
https://forms.gle/EKFfL2v6tZuhCSo97

 

전북개헌운동본부 하연호 공동상임대표 가석방 촉구 탄원서

하연호 가석방 촉구 탄원서 사 건 번 호 : 2025도12006 국가보안법위반(화합·통신등) 등 수 신 : 법무부 장관 (가석방심사위원회 귀중) 피 탄 원 인 : 하연호 [탄원 취지] 국가 형벌권의 공정한 집행

docs.google.com

하연호 선생의 석방을 요구한다. 그의 양심과 삶을 이대로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살아온 그의 시간을 더는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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