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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유조선 전쟁’은 이란·이라크 전쟁의 해상전이었다. 이란과 이라크가 서로의 석유 시설과 유조선을 공격하자, 미국은 쿠웨이트 유조선 호위와 해상 통항 보호를 명분으로 개입했다. 전쟁의 기본 당사자는 이란과 이라크였지만, 해상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직접 충돌했다. 당시 충돌의 전개와 결과는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는 긴장의 위험을 가늠하고, 향후 전개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역사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이 아무런 피해 없이 유조선과 상선을 빼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1987년 5월 페르시아만에서 이라크 전투기의 엑조세 미사일 공격을 받은 미 해군 호위함 스타크호. 이 공격으로 미군 수병 37명이 숨졌다. 사진: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

1988년 4월 미 해군 호위함 새뮤얼 B. 로버츠호가 이란 기뢰에 피해를 입자, 미국은 ‘프레잉 맨티스’ 작전으로 이란 함정과 해상 유전 시설을 공격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미 해군 빈센스호가 이란항공 655편을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했고, 민간인 290명이 숨졌다. 해상 통항 보호가 군사 충돌과 확전, 대규모 인명 피해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88년 4월 ‘프레잉 맨티스’ 작전 당시 미군의 공격을 받은 이란 해상 유전 시설. 유조선 호위 작전은 곧 미국과 이란의 직접 교전으로 번졌다. 사진: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

월스트리트저널 실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4월 중순 시작한 이란 항구 봉쇄 작전을 유지하면서도, 별도로 ‘프로젝트 프리덤’을 가동해 해협을 빠져나가려는 상선의 통항을 '돕겠다'는 입장이다. 미 중부사령부는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춘 구축함과 항공기 100대 이상, 다영역 무인체계, 병력 1만5000명을 투입해 해협 상공과 해상에 방어망을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수중 드론을 투입해 통항 가능한 항로를 확보했고, 국제 해운이 이 항로를 따르도록 유도하기 위해 미국 국적 선박을 먼저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작전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프로젝트 프리덤은 과거와 같은 직접 호위 작전과는 거리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고립된 상선과 선원들의 안전한 통항을 돕는 구상으로 소개하면서도, 미군이 군함과 항공기로 보호 범위를 제공할 뿐 상선 곁에 붙어 항로 전체를 호송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여전히 허가 없는 통항은 위험하다는 경고를 되풀이하고 있다. 직접 호위가 아니더라도, 미국 군함과 항공기가 해협 주변에 촘촘히 배치되면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은 커진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1980년대 ‘유조선 전쟁’ 당시의 전술을 다시 꺼내 들고 있지만, 오늘의 위험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란은 값싼 기뢰와 드론, 고속정을 활용해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에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고가의 군함과 항공기, 방공망을 투입해야 한다. 저렴한 드론을 값비싼 방공망으로 상대해야 했던 최근의 전장처럼, 호르무즈에서도 비용의 비대칭이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그 부담이 비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뢰 하나, 드론 한 대, 한 번의 오판이 군함 피격과 대규모 사상자, 나아가 전면적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80년대의 교훈은 분명하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프리덤’은 작은 충돌을 전면전으로 키울 수 있는 위험한 군사 작전이다. 한국이 그 위험을 떠안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병 압박에 맞서, 이재명 정부는 어떤 파병 요구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특히 국회가 방패막이 되어야 한다.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개인 모두 반대 여론을 분명히 형성해 정부가 파병 압박에 굴복하지 않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가담해 우리 청년들이 피를 흘릴 이유는 없다.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 군인 한 명, 전투함 한 척도 보내서는 안 된다.

다음은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이란, 1980년대 ‘유조선 전쟁’ 전술에 드론까지…커지는 호르무즈 위협」 기사의 원문 전문 해석본이다. / 편집자

1987년 12월 ‘유조선 전쟁’ 당시 두바이 인근 해상에서 이란의 공격을 하루 두 차례 받은 그리스 선적 유조선. 노르베르트 실러/AFP/게티이미지

 

이란, 1980년대 ‘유조선 전쟁’ 전술에 드론까지…커지는 호르무즈 위협

 

제임스 T. 어레디

 

"40년 전 이란과 미국은 원유 수송을 둘러싸고 충돌 위기로 치달았다. 오늘의 전쟁과 정확히 겹치지는 않지만, 당시의 긴장은 지금의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은 미사일과 기뢰, 고속정을 앞세워 호르무즈 해협에서 해상 통제력을 과시했다. 미국은 해병대의 해상 유전 시설 지휘 거점 타격까지 포함한 대규모 해군 작전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테헤란이 쥐고 있던 해협의 목줄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당시 전술에 공격용 드론 전력까지 더해졌다. 드론은 이란의 전력을 키우는 핵심 수단이 되고 있다. 반면 미국 해군은 아직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유조선과 상선을 군함으로 직접 호위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이후 해협 주변은 한 달 가까이 비교적 잠잠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박 보호 구상을 밝힌 뒤 이란의 선박 공격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다만 현재의 대치는 1980년대 ‘유조선 전쟁’과는 양상이 다르다. 유조선 전쟁은 이란과 이라크가 상대국의 석유 시설과 운송망을 공격하던 과정에서 벌어진 해상 충돌을 뜻한다. 당시 미국은 전쟁의 불똥을 맞은 일부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했다.

올해 『걸프 유조선 전쟁』(Tanker War in the Gulf)을 펴낸 전직 미국 외교관이자 해군 장교 톰 더피는 같은 당사자들이 같은 바다에서 맞서고 있지만, 지금은 정치 환경도 위협 양상도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이란의 전략이 50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역내 수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상대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 해협을 통과하려는 상선을 미국이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기뢰 위치를 공유하고, 비교적 안전한 항로를 평가해 제공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7년 이후 미 해군 함정이 수십 차례 이란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갔던 것과 같은 복잡한 호위 작전을 곧바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도 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이 정도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수백 척의 선박이 묶인 상황에서 직접 호위 없이 안전한 통항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란은 테헤란의 허가 없이 해협을 지나려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미군을 향해서도 접근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두 달 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뒤 상선 25척 이상에 발포하고 2척을 나포했다. 동시에 미 해군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벌리며,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이 좁은 해협을 사실상 막아 세웠다.

중동연구소의 케네스 M. 폴락은 1980년대 이란의 목표가 유가를 끌어올리되 미국을 전면 충돌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었다고 짚었다. 그러나 지금 이란 강경파 지도부는 정권 생존이 걸린 국면에서 역내 원유 수출을 조여 세계 경제에 타격을 주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러시아·중국과의 협력 관계, 드론을 비롯한 현대 무기 체계가 더해지면서 상선과 군함을 겨냥한 공격은 쉬워지고, 이를 막아야 하는 쪽의 부담은 커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미 해군의 처지도 40년 전과 다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원유 흐름을 지키기 위해 유조선 전쟁에 해군을 투입했을 때, 미 해군은 보유 함정 약 600척 가운데 30척 안팎을 작전에 배치했고 호위함들은 페르시아만 깊숙이 들어갔다. 지금 미 해군은 호위함 전력이 없고, 전체 규모도 당시의 절반 수준이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란을 원거리에서 견제하면서 이란 항구를 오가는 상선을 차단·감시하기 위해 함정 약 12척과 항공기 100여 대를 투입하고 있다. 미국 구상의 핵심은 해협 바깥인 오만만과 그 주변에서 이란을 봉쇄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이란이 해협 봉쇄를 거두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더피는 “맞는 게 걱정되는 건 당연하고, 이란도 그 점을 안다”고 말했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 워싱턴 중동정책연구소)의 마이클 아이젠슈타트는 새로 발표된 조치가 과거와 같은 ‘정식 호송 체계’라기보다, 필요할 경우 방어 능력을 제공하는 군의 감시·대응 체계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1987년으로 돌아가면, 미국이 중동 원유에 크게 의존하던 시기에 쿠웨이트 유조선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자, 레이건 대통령은 쿠웨이트 유조선 11척을 미국 선박으로 재등록(선적 변경)하고 호위를 제공하기로 했다. 냉전 정치가 작동한 결과였다. 쿠웨이트가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그제야 미국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본격적인 호위 작전에 들어가기 전,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라크 전투기가 오인 사격으로 미 해군 구축함 스타크호(USS Stark)에 엑조세 미사일 2발을 명중시켜 미군 수병 37명이 숨지고 다수가 중상을 입었다.

어니스트 윌(Earnest Will)로 불린 호위 작전에서 미국은 해군의 존재만으로 억지력이 생길 것으로 보고 호송 항로를 사전에 공개했다. 그러나 첫 임무부터 문제가 터졌다. 공중 지원과 미 군함 8척이 동원된 호송에서, 미국 선박으로 재등록된 유조선 2척 가운데 1척이 이란이 새로 설치한 기뢰에 걸렸다. 선박은 항해를 이어갔지만, 미국이 갖고 있던 ‘무적감’은 크게 흔들렸다.

1988년에는 이란의 상선 공격이 주 1회꼴로 이어지면서 서방 10여 개국과 역내 8개국 해군이 순찰에 나섰다. 미 해군은 무장 바지선 등을 투입해 호위 체계를 보강했다. 이란이 미 해군 함정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고 원유 흐름도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지만, 고속정 사수들이 호위 대상 선박에 로켓추진유탄(RPG)을 발사하는 일은 벌어졌다.

전황의 분수령은 미 해군 호위함 새뮤얼 B. 로버츠호(USS Samuel B. Roberts)가 이란산 기뢰에 걸린 사건이었다. 약 1500달러짜리 기뢰로 9600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은 곧바로 ‘프레잉 맨티스(Praying Mantis)’ 작전에 나서 이란 함정을 파괴하고, 이란이 유조선 공격의 지휘·통제 거점으로 쓴다고 주장한 해상 유전 시설을 타격했다. 이후 이란은 한발 물러섰다.

가장 참혹한 단일 사건은 그 뒤에 벌어졌다. 1988년 7월 미 해군 빈센스호가 이란항공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두바이에서 이륙한 직후 격추하면서 민간인 290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전쟁에 지친 이란이 유엔 안보리 결의 598호를 수용하는 데 영향을 준 요인으로 평가된다. 그해 8월 20일, 이란과 이라크 간 휴전이 발효되며 8년 전쟁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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