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만수르 아니어도 누구든 실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추구한다. 캠핑 짐을 트렁크에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리를 살피다 어느 공원 주차장 옆에 자리 잡았다. 주말을 여기서 지내야지. 서울 신당동에서 금요일 17시에 출발해 1시간 걸렸으니 접근성도 용이하고, 덤으로 깨끗한 공중화장실도 있다. 좁은 텐트라 거실 인테리어는 촘촘히 일렬로 두 평만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왼쪽부터 가스레인지 식기보관통 식수대 냉장고 무선 인터넷과 블루투스 스피커, 노트북이 제공되는 침실. 야전 침대 위에 백패킹용 에어 매트리스를 올리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깔고 경량 덕다운 담요를 덮는다. 난방과 함께 서큘레이터로 공기를 순환시키기 때문에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실내 온도는 25도..
전국 곳곳에 이름난 술이 많지만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어 마이 아쉽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시라. 택배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점찍어 둔 막걸리는 라벨에서 제조사 번호를 찾아 전화로 구입할 수 있는데, 가령 1.7리터 들이 원주 치악산막걸리 12병이 택배비 포함 단돈 27,000원. 술값을 벌기 위해 돈을 더 벌지 않아도 된다. 배송 도중 흔들리거나 눌리기도 하고, 내부 압력이 증가해 가스가 배출되면서 새어 나온 막걸리가 용기에 묻기 마련인데, 이대로 냉장고에 넣으면 용기 겉면에 묻은 술이 건조되어 하얀 가루로 떨어지기 때문에 닦아서 넣는 것이 좋다. 이때 라벨까지 함께 벗겨내면 재활용 공정에 큰 도움이 된다. 분리수거 때마다 제거하려면 귀찮은데, 식재료 손질 하듯 싹 밀고 나니 의문의 환경 운동. 결벽..
조나단 시걸(소설 '갈매기의 꿈'의 원제) 발간 이후 계속 받은 질문은 "리처드, 다음엔 무엇을 쓸 건가요? '갈매기의 꿈' 차기작 말이에요."였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내 책 속에 담겨 있으니, 나는 앞으로 한 마디도 더 쓸 내용이 없노라고 답했다. 차가 압류되는 등 한동안 시달렸던 빈곤 때문에 한밤중까지 글을 쓰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낡은 경비행기를 타고 미국 중서부에 넓게 펼쳐진 목초지로 날아가는데, 3달러씩 받고 승객들을 실어 나르면서 오랜 긴장감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던 것이다. 사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떠오른 생각에 등을 돌릴 수 있고 그 문을 열지 않을 수만 있다면, 결코 펜을 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