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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서 종전 대신 ‘살 수 없는 상태’가 일상으로 굳어가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행보는 두 갈래로 뚜렷해지고 있다. 하나는 서안지구에서 점령 통치의 권한을 이스라엘 쪽으로 더 끌어와 사실상 병합을 굳히려는 흐름, 다른 하나는 홍해–아덴만 요충지인 소말릴란드를 둘러싼 승인 카드를 발판으로 무역·안보 협력을 엮어 역외 거점을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1. 가자에서 서안·홍해로: 파괴의 다음 설계도

네타냐후, “전쟁 끝나도 돌아갈 곳 없을 것”
국제이주기구(IOM)는 2025년 말 문서에서 유엔 추정을 인용해 가자 주택의 약 92%가 손상 또는 파괴된 것으로 분석했다. 가자 지구에 대한 군사 작전의 종료 여부와 상관 없이, 원주민이 집으로 돌아가 삶을 재건할 기본 조건 자체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유엔 OCHA(점령지 인도주의조정실)가 2026년 1월 중순 발표한 현황 보고서는, 공습·포격뿐 아니라 반복되는 이동 명령과 구호 접근 제한이 주민들을 대피와 재대피의 악순환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전한다. 전쟁이 생사를 통제하는 일상의 규범으로 변한 것이다.

“총보다 문서”, 서안지구 점령 제도화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지구를 향해 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착민의 토지 매입을 쉽게 하고, 점령지에서 이스라엘 당국의 집행·관리 권한을 확대하는 조치를 추진·승인한 것이다. 불도저와 총 대신, 법령과 행정 절차로 서안의 통치 구조를 재편해 팔레스타인 자치 공간을 잠식하려는 의도이다. 엘리 코헨 에너지장관은 정부 조치가 “사실상의 주권”을 구현하는 것이라 강조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형성 자체를 차단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못 박았다. 이 조치는 서안의 ‘A·B·C 구역’으로 상징돼 온 오슬로 체제의 틀을 무효화시킨다.

*오슬로 체제는 1990년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맺은 합의에 따라 서안지구를 A·B·C로 나누고, A구역은 팔레스타인 자치기구가 민정·치안을 맡으며, B구역은 팔레스타인 민정과 이스라엘 치안이 병존하고, C구역은 이스라엘이 행정·치안을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구조로 굳어진 점령 관리의 틀을 말한다.

‘소말릴란드 카드’의 노림수
이스라엘은 홍해–아덴만 요충지인 소말릴란드를 둘러싼 체제 승인과 무역, 안보 협력을 고리로 역외 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소말릴란드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이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사실상 자치정부처럼 운영돼 왔지만,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널리 인정받지 못했으며 소말리아 연방정부는 이를 자국 영토의 일부로 본다. 따라서 소말릴란드를 ‘국가’로 대우하는 외부의 승인·협력 움직임은 소말리아 입장에선 주권 침해로 간주돼, 곧바로 외교·안보 갈등으로 번진다. 이는 홍해 항로와 역내 군사화의 흐름과 맞물릴 경우, 이해관계 충돌이 누적되면 지역 분쟁이 연쇄적으로 격화될 수 있다.

압디라흐만(압둘라히) 소말릴란드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무역 협력을 기대하며, 리튬·석유·가스 등 자원과 해양 자산을 제안할 수 있다고 밝혔다. 네타냐후의 초청으로 이스라엘 방문 계획을 언급했고, 군사 협력 가능성까지 열어두었다. 다만 “기지 논의는 없었다”며 한 발 물러섰다. 네타냐후는 소말릴란드를 ‘아프리카의 이스라엘’처럼 만들고, 승인·투자·자원·항만 접근을 엮어 홍해권의 거점과 협상력을 키우려 한다.

AP는 이런 움직임이 홍해에서 ‘친이란 세력’ 후티의 활동과 충돌하며, 소말릴란드를 발판으로 이스라엘이 감시망을 넓히거나 거점을 확보하려 한다고 보도하는 한편, 소말리아 정부와 아프리카연합(AU)·이슬람협력기구(OIC)의 반발을 키우고, 무장세력 알샤바브까지 자극해 지역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전했다. 즉 ‘소말릴란드 승인’은 군사화와 내전 위험을 키우는 불씨다.

소말리아 정부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강경하다. 하산 셰이크 모하무드 대통령은 “소말릴란드에 이스라엘 기지가 생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며 맞섰다. 홍해–아덴만은 해상 공격과 봉쇄, 항로 보호 작전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불안정의 비용(치안·물가·피난·동원)은 주변국이 떠안게 된다.

알자지라는 소말리아가 사우디와 군사협력 MOU를 체결했다고 전하며, 이 문서가 “소말릴란드 인정 불가”에 대한 역내 지지 확보 노력과 맞물린다고 설명했다. 소말릴란드 문제는 단일 사안이 아니라, 홍해권을 둘러싼 걸프·터키·중국·미국 등 경쟁과 얽혀 ‘안보 블록화’로 번질 여지를 보여준다.

가자: 삶의 말살, 서안: 국가의 해체, 홍해: 군사화 확장’
지금까지의 조각들을 한 줄로 잇는다면 이렇다.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귀환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서안에서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조건을 해체하며, 홍해에서는 역내 군사화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행정·경제·군사적 압박는 “안보”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된다.

전쟁과 점령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데도, 국제사회는 사망과 피란, 파괴율 같은 피해 규모를 집계하는 데 그친다. 가해를 멈출 수단을 실행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사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삶은 더욱 처참해진다. 이스라엘은 홍해와 아프리카의 뿔, 즉 예멘과 지부티·에리트레아·소말리아(소말릴란드)로 이어지는 해상 요충지에 새 전쟁의 불을 놓으려는 중이다.

2. ’가자 이후’의 역풍: 이스라엘·미국 몰락의 징후들

외교와 동맹의 붕괴
그러나 “막 나가는” 이스라엘과 이를 비호하는 미국의 침략주의는 결국 실패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2026년 2월 서안 권한 확대 조치가 알려지자, 사우디·요르단·UAE는 “병합으로 가는 수순”이라며 즉각 공개 비판했다. 관계 유지·정상화 노선을 택했던 국가들까지 합세한 점은, 이스라엘의 ‘정상화 외교’가 붕괴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같은 날 영국 정부도 이 결정이 “서안 통제 확대”이며 되돌릴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두 국가 해법 훼손’이라며 우려만 표하던 서방권에서, 영국의 반발은 이례적이다.

카타르 외교부 홈페이지에 8개국(카타르·요르단·UAE·인도네시아·파키스탄·튀르키예·사우디·이집트) 장관 명의로 올라온 공동성명은 이스라엘의 조치들을 “불법적 주권 강요”, “정착활동 고착”, “병합 시도 가속”으로 규정했다. 주변국들의 문제정의가 ‘충돌 관리’에서 ‘불법 주권화’로 이동한 것이다.

힘 빠진 미국
미국이 “가장 큰 외교 성과”로 내세우는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는, 가자 휴전이 사실상 전제로 붙으며 협상 자체가 표류하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움직여” 일괄 타결을 성사시키는 능력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미국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는 사우디 정상화가 “이탈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사우디가 정상화를 추진하려면 “팔레스타인을 버렸다”는 비난을 감당해야 한다. 비난은 국내 정치와 역내 리더십을 직접 흔든다.

아프리카연합의 정면 반발
이스라엘이 소말릴란드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자, 아프리카연합(AU) 정치·평화안보위원회가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이스라엘의 ‘승인 카드’가 아프리카에서 정통성과 주권 원칙을 건드려 역풍을 부른 것이다. 이스라엘의 ‘홍해 거점’ 구상은 ‘대륙 외교 리스크’로 전환됐다. 신화통신은 AU의 “강력 규탄·철회 촉구” 소식을 전하며, 이 사안이 양자 외교에서 아프리카 다자기구의 원칙 문제로 격상됐음을 지적했다.

유럽의 균열
스페인은 이스라엘행 무기 운송 선박·항공기의 자국 항만과 영공 이용을 금지했다. 전쟁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물류·통로를 실제로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착촌 생산품에 대한 교역 제한과, 가자 ‘집단학살’에 가담한 인물의 입국 제한 검토까지 언급됐고, 미국은 이에 “우려”를 표했다.

유럽의 균열은 정부 조치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2025년 9월 이탈리아 라벤나 항만이 이스라엘로 향하는 화물 트럭의 진입을 막았다. 며칠 뒤 제노바에서도 항만 노동자들이 도로를 봉쇄하며 무기 수출 중단을 요구했다. 보다 못한 노동자와 지방정부가 직접 나선 것이다.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가자지구로 향하는 다국적 구호 선단인 '천 개의 마들린' 출항이 이뤄졌다.

네타냐후의 정치·사법 위기
국제사법재판소(ICJ) 홈페이지는 남아공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기한 사건에 대한 잠정조치가 진행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국제법적 비용’은 누적되고, 이스라엘의 외교 공간은 좁아진다. 남아공은 가자지구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됨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에 추가 조치를 요구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관련한 절차를 공식 공지했고, 로이터는 이스라엘의 조사 중단 시도가 기각됐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의 국제사법 위기가 상수로 굳어지자, 2026년 2월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관계자와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 특별보고관 등에게 ‘테러리스트급 제재’를 부과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이는 전쟁 책임을 둘러싼 국제법적 단죄가 원칙과 규범이 아니라 워싱턴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흔들릴 수 있음을 드러낸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도 가자 휴전 결의에 거부권을 반복 행사해 왔다. 2025년 9월 18일 “즉각·무조건·영구 휴전”과 구호 제한 해제를 요구한 결의안은 14개국이 찬성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부결돼 ‘6번째 거부권’으로 기록됐다. 미국의 안보리 거부권과 무기 이전이 계속되는 한, “평화”는 공허한 구호로 남고 전쟁은 구조적으로 지속된다.

“권좌에서 물러나면 사법처리에 직면할 수 있는 네타냐후가 전쟁을 개인의 면책 장치처럼 활용한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연정의 균열을 막고 책임을 분산하는 수단으로, 국제적 차원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와 유엔의 압박을 피해, 정권 생존의 도구로 전쟁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미군 주둔 근거 약화와 철수 요구
미국은 2024년 이라크와 수백 명 규모의 미군 감축을 합의했다. 이라크 총리는 “외국군이 떠나야 무장세력 해체가 가능하다”고 말했고, 이는 미국이 주장하는 ‘주둔=안정’ 공식이 설득력을 잃었음을 시사한다. 이라크는 2026년 1월 미군 철수 뒤 자국 핵심 기지를 완전히 통제했다. 중동에서 미국 군사력의 ‘물리적 기반’이 줄어드는 신호다. 뉴아랍은 “아랍권 여론 조사(Arab Opinion Index 2024–25)”를 인용한 보도에서, 아랍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꼽혔다고 밝혔다.

외교 단절·추방까지: 남아공–이스라엘 충돌
파이낸셜 타임즈는 2026년 2월 이스라엘과 남아공이 상호 외교관을 추방하며 분쟁이 격화됐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단지 ‘중동 내부’가 아니라, 외교 관계의 단절과 보복 조치로까지 번지는 국제 문제가 된 것이다. 르몽드도 남아공–이스라엘 관계가 최저점으로 떨어졌다고 전하며, 이 갈등이 미국의 보복 우려까지 동반한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문제’가 미국의 대외 신뢰와도 결박돼 있음을 뜻한다.

아브라함 협정의 균열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 등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합의다. 모로코와 수단이 뒤따르며 ‘공존’과 ‘협력’을 내세웠지만, 가자 전쟁 이후 이 틀은 확장은커녕 유지하기도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정상화가 “경제·안보 협력의 플랫폼”이 되는 만큼, 전쟁이 길어질수록 협정 참여국들은 국내 여론과 역내 정통성 비용을 더 크게 떠안게 된다. 결과적으로 협정은 이스라엘의 지역 통합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병합과 전쟁이 심화될수록 파트너들까지 거리두기와 ‘레드라인’ 경고에 나서게 만드는 불안정한 틀이 됐다.

3. 네타냐후·트럼프식 폭주의 종착지

결국 ‘가자 이후’를 설계한다는 네타냐후의 구상은, 잿더미 위에 성을 쌓겠다는 허망한 망상에 가깝다. 가자에서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서안에서 점령을 제도화하며, 홍해로 발을 뻗어 분쟁의 고리를 키울수록, 이스라엘이 얻는 것은 영향력의 확장이 아니라 정당성의 상실이다. 아랍권의 공개 반발, 아프리카연합의 철회 요구, 유럽의 통로 통제, 국제사법 전선의 압박, 미군 주둔의 정당성 약화, 외교 단절과 추방까지 이어지는 파열음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폭력은 잠시 권능을 내는 듯 보일지 몰라도, 그 폭력이 낳는 반작용은 더 넓고 더 깊게 쌓이며, 결국 외교와 경제, 군사적 발판을 동시에 갉아먹는다.

네타냐후는 소말릴란드를 기반으로 ‘아프리카 내 제2 이스라엘’ 구축을 꿈꾸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그의 전쟁은 정상화의 외피를 찢고 동맹의 균열을 드러내며, 미국의 비호는 중재자라는 마지막 권위를 탕진했다. 규범을 깨고도 버틸 수 있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고립을 부르는 신호가 되고, 고립은 곧 몰락의 속도를 앞당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고린도후서 9:6

가자에 뿌린 파괴는 중동 전체의 불신으로 돌아오고, 서안에 심은 병합은 국제법과 세계 여론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네타냐후는 그가 본보기로 삼은 트럼프만큼이나 빠르게 추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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