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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에서 진행된 두 건의 보궐선거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민주당 텃밭에서는 더 강경한 민주당이 이겼고, 트럼프가 크게 이겼던 공화당 텃밭은 뒤집혔다."
용어와 제도부터 짚어보자. 보궐선거는 임기 중 의원이 사망·사임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그 빈자리를 메우는 선거다. 그리고 텍사스는 1차에서 과반이 안 나오면 결선을 다시 치르는 경우가 흔하다. 이번에 화제가 된 두 선거 모두 ‘보궐+결선’ 조합이었다.

휴스턴 연방하원 18지구: “노엄 탄핵” 외친 민주당 후보 압승, ‘트럼프 이반’은 아냐
휴스턴 지역 연방하원 18지구(TX-18)에서 승리한 인물은 해리스 카운티 최초의 흑인 변호사(법무책임자) 출신인 크리스천 메네피다. 그는 결선에서 68%를 얻어 크게 이겼고, 취임 과정에서 “노엄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과 "ICE 해체 수준의 개편"을 외치며 트럼프 행정부의 이주민 단속 기조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장면만 보면 “텍사스가 트럼프에 등을 돌렸다”는 해석이 나오기 쉽지만, 사실 공화당을 꺾은 선거는 아니다.
연방하원 18지구는 ‘텍사스에 있는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이번 결선도 민주당 후보끼리 붙었다. 따라서 “트럼프 지지층이 이동했다”가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이 "더 날이 선 메시지(탄핵, 단속 비판)를 선택했다"에 가깝다. 이 지역구는 1년 가까이 사실상 공석이었다. 의원이 잇달아 사망(실라 잭슨 리→실베스터 터너)한 뒤, 주지사가 보궐 날짜를 늦게 잡으면서 공백이 길어졌다. 선거 일정을 쥔 그레그 애벗 주지사에게 책임론이 쏠린 이유다. 여기에 트럼프식 이주·치안 강경 노선과 폭정이 키운 분노가 ‘대표를 안 뽑아줘서 지역이 방치됐다’는 민심과 맞물려, “탄핵” 같은 거친 언어로 터져 나왔다.

텍사스 주상원 9선거구: 공화당 텃밭 뒤집은 테일러 레멧 승리, 트럼프 진영에 타격
미국 텍사스 북부 태런트 카운티 권역의 주상원 9선거구(SD-9) 보궐선거는, ‘트럼프 표밭’으로 간주되던 지역에서 민주당 테일러 레멧이 공화당 리 웜스갱스를 큰 격차로 꺾으면서 “왜 굳이 보궐 상황을 만들었나”라는 의문을 키웠다. 출발점은 공화당 현역 주상원의원 켈리 핸콕의 ‘자리 이동’이었다. 텍사스 주 감사관이던 글렌 헤이거가 텍사스 A&M 시스템 총장직으로 옮기며 자리가 비자, 핸콕은 그 공백을 기회로 봤다. 그는 주상원 의원직을 내려놓고 감사관실로 들어가 ‘치프 클럭(수석 실무책임자)’을 맡아, 규정상 임시 감사관(acting comptroller)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지역구 의석을 비워서라도, 주 전체를 상대하는 더 큰 권력 자리(감사관)로 올라타려다 보니 보궐선거가 불가피해졌고, 공화당의 ‘안전지대’ 계산이 결국 뒤집히며 정치적 충격으로 돌아온 셈이다.
선거 결과는 텍사스 정치권을 크게 흔들었다. 테일러 레멧이 57% 대 43%로 승리해, 트럼프가 2024년에 17% 차로 이겼던 지역을 민주당이 가져간 것이다. 공화당이 “여긴 누가 나와도 이기는 자리”라고 믿어 온 ‘안전지대’가 무너졌다. 현지 방송들도 “공화당 강세로 유명한 ‘태런티 카운티’에서 나온 큰 이변”이라고 못 박았다. 더 중요한 건 ‘박빙’도 아니고 두 자릿수 격차를 뒤집었다는 사실이다. “특수선거라 투표율이 낮았다”는 말만으로는 이 반전을 설명하기 어렵다.
<텍사스 트리뷴>이 강조한 건 이번 대결 구도도 가진 상징성이다. 레멧은 ‘노동조합 지도자’ 정체성을 앞세웠고, 상대는 마가 진영의 강경파 리 웜스갱스였다. 트럼프는 선거 전날 그에게 완전하고 전적인 지지를 보냈다. 텍사스 주상원 9선거구에서 트럼프식 문화전쟁·갈라치기 메시지와 생활·노동 의제가 정면충돌했고, 후자가 승리한 것이다.

“노엄 탄핵” 상정은 실제 상황, 가결은 불가능해
크리스천 메네피의 공약 “국토안보부 수장 탄핵”이 빈말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 의회(연방 의회) 공식 사이트 Congress.gov에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노엄 탄핵 결의안(H.Res.996)이 올라와 있고, 2026년 1월 14일자로 내용이 공개돼 있다. 즉 탄핵 절차가 이미 게시된 상태다.
https://www.congress.gov/bill/119th-congress/house-resolution/996/text?utm_source=chatgpt.com
탄핵안이 실제로 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하원은 공화당 218석·민주당 214석(결원 3석)이라, 민주당이 노엄 탄핵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키려면 공화당 이탈표가 최소 3표 필요하다. 통상 ‘재적 기준’으로 보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어렵사리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상원은 공화당 53석·민주당 47석(민주당 쪽에 무소속 2 포함) 구도라 ‘유죄’(파면)를 만들려면, 찬성 67표(3분의 2)가 필요하고, 민주당 47표를 다 끌어모아도 공화당에서 20명이나 돌아서야 한다.
따라서 “노엄 탄핵 → 트럼프 몰락”과 같은 행복회로는 현 시점에서 그릴 수 없다. 다만 탄핵 프레임이 커질수록, 트럼프 행정부의 이주·치안 강경 노선은 정치적 비용과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바디캠 지급과 영장 없는 주거 진입: 단속의 폭력은 계속된다
트럼프식 정치가 남긴 혼란을 가장 날것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선거 구호보다 이주 단속 현장에서의 사망 사건과 그 뒤에 이어진 전국 규모의 반발이다. <로이터>와 <AP>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요원에 의한 총격 사망 논란이 커지자, 국토안보부가 “즉시” 현장 요원들에게 바디캠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걸 “진정성 있는 변화”로 믿는 사람은 없다. 같은 국면에서 <AP>는 이민세관단속국(ICE) 내부 메모를 인용해, 판사 영장(사법 영장) 없이도 ‘행정 영장’만으로 주거지에 강제 진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지침이 논란을 키웠다고 보도했다. 즉 카메라는 달겠다고 하면서, 현장 권한은 오히려 더 거칠게 밀어붙이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얘기다.
미국 정치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동안, 그 대가를 먼저 치르는 건 이주민·유색인·저소득층이다. 이들에겐 단속이 일상이 되고, 공포가 생활이 되며, 폭력은 ‘예외’가 아니라 늘 곁에 붙어 다닌다. 주상원 9선거구에서 ‘노동자 후보’가 승리하고, 휴스턴 연방하원 18지구에서 “탄핵”이 대중의 언어로 튀어나온 것은 국가폭력에 대한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며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음을 밝혀준다.
트럼프는 아직 건재하다, 하지만 ‘안전지대’는 무너졌다
이번 보궐 선거 결과를 “트럼프는 끝났다”로 단정하는 건 섣부르다. 휴스턴 연방하원 18지구는 민주당 텃밭이었고, 그 승리는 ‘정권 심판’이라기보다 ‘민주당 진영 내부의 급진화·강경화’에 가깝다. 반면 주상원 9선거구는 정말로 트럼프 텃밭이 뒤집혔다는 점에서, 공화당이 기대온 ‘안전지대’의 균열을 예고한 사건이다.
트럼프의 갈라치기 정치는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단속 폭력, 공동체 불신, 생활 의제의 붕괴)을 너무 크게 만든다. 이번 주상원 9선거구는 그 비용이 쌓여, 텍사스 같은 텃밭이 뒤집히는 장면을 보여줬고, 휴스턴 연방하원 18지구에서는 주권자들의 분노가 “노엄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 요구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트럼프는 여전히 건재하다. 하지만 그가 설계한 판은 더 불안정해졌고, 공화당의 안전지대는 사라지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 결과가 202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상원 과반’으로 이어질 씨앗이 될 가능성은 있다. 교외 표심의 미세한 이동, 라틴계·이주민 공동체의 반발, 노동조합의 조직력, 그리고 ICE 단속과 공포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여러 주에서 동시에 겹치면 ‘전국적 역풍’이 만들어질 여지도 남아 있다. 다만 상원은 애초에 뒤집을 수 있는 의석이 많지 않고, 민주당이 지켜야 할 자리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번 선거 결과만으로 트럼프의 폭주에 당장 브레이크가 걸릴 거라고 보긴 어렵다.
미국 주권자에게 남은 숙제: 트럼프의 똥, 미국이 치워라
결론은 더 단순하고 불편하다. 당분간 우리는 제멋대로 오락가락하는 트럼프를 계속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동맹을 착취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분쟁 지역엔 불쏘시개를 던지며, 제재·단속·혐오를 '정책'처럼 수출해 범지구적 피해를 흩뿌린다.
트럼프를 권력 위로 끌어올린 것도, 그가 자라난 토양을 방치해 온 것도 결국 미국 정치이고 미국 사회다. 그 민폐의 대가를 다른 나라들이 대신 치를 이유는 없다. 이제 미국의 주권자들이 해야 할 일은 “누가 대신 막아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폭주를 멈추는 것이다. 자기 집에서 난 사고는 자기 손으로 수습해야 한다. ‘트럼프의 똥은 미국이 치워라’ 2026년 중간선거를 바라보는 가장 현실적인 주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