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국 사회는 지금 집값에 잠식돼 망해가고 있다. 경제가 붕괴해서도, 전쟁이 닥쳐서도 아니다. 아파트는 어느새 우리 시대의 우상, 투기의 종교, 공동체를 좀먹는 망국병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방치한 대가로, 조용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미래를 상실해가고 있다.

집이 ‘사는 곳’이 아니라 ‘재산을 불리는 곳’이 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뒤틀렸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실제로 필요한 사람보다, 지금 사두면 더 비싸게 팔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살 집’을 찾는 대신 ‘오를 집’을 쫓으며, ‘영혼까지 끌어’ 빚을 내어 매달린다. 집 한 채가 삶의 목표를 삼켜버린 사회, 인생 전체가 주택 마련에 저당 잡힌 현실이 오늘의 한국이다.

이 망국병이 불러오는 파국은 처참하다. 첫째는 출산의 붕괴다. 1970년대 한국에서는 한 해 백만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지금은 그 4분의 1 수준이다. 불과 1.5세대 만에 출생이 무너진 것은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을 조건을 파괴해버린 결과다. 몇 세대를 모아야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사회에서 결혼은 미뤄지고 출산은 포기된다. 청년은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주거비에 질식한다. 우리는 태어났어야 할 아이들의 4분의 3을 사전에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망국이 아니면 무엇인가.

둘째는 금융과 경제의 붕괴 위험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금융이 무너진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금융을 살리려면 집값을 계속 올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거꾸로다. 금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달아오른 부동산 과열을 꺼야 한다.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빚이 늘고, 빚이 늘수록 사회는 집값이 계속 올라야만 버틸 수 있는 구조에 갇힌다. 거품이 커질수록 붕괴의 충격도 커진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을 방치한 끝에 붕괴를 맞았고, 이후 수십 년을 ‘잃어버린 시대’로 보내야 했다. 미국도 집값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믿음 속에 대출을 무한히 확대했다가 서브프라임 위기로 금융 전체가 흔들렸다. 부동산 투기는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아니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셋째는 공동체의 붕괴다. 아파트 우상화는 삶의 풍경 속에서도 드러난다. 단지마다 고급 브랜드를 두르고 영문 이름을 내건다. ‘캐슬’과 ‘팰리스’와 ‘포레’가 난무하는 이 과시는 집을 계급으로 숭배하는 신식민지 병리현상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보다 ‘어느 단지에 사느냐’로 서열을 매기고, 동네의 가치는 집값 시세로 읽힌다.

이 구조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고착돼 있다. 집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부자가 된다.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일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 부동산은 세습의 울타리가 되고, 노동의 가치에 냉소를 던진다. 이런 사회가 지속될 수는 없다.

정치가 집값 앞에서 눈치를 보면 사회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집값을 잡겠다고 하면 “내 재산을 건드리느냐”는 항의가 쏟아지고, 집값이 뛰면 무주택자와 청년들은 좌절한다. 그렇다고 손을 놓으면 집값은 더 거칠게 사람들의 삶을 집어삼킨다.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부동산 투기를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 정치는 지금 이 병을 끊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절박한 시점에서도,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집값은 건드리지 말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의 투기 억제 발언을 두고 “겁주기”니 “협박”이니 몰아세우며, 답은 규제 완화와 재건축 확대라고 되풀이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부의 말이 아니다. 오늘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것은 “내일 또 오를까” 하는 집값의 공포이고, 청년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번 생에는 집이 없다”는 체념이다.

규제를 풀고 개발을 앞세우는 처방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이미 숱하게 보아왔다. 재건축 기대감이 붙는 순간 가격이 뛰고, 빚이 늘고, 원래 살던 사람들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밀려난다. 집은 거처가 아니라 웃돈을 얹어 되팔기 위한 표적이 되고, 투기는 더 대담해진다.

“시장을 믿어라”는 말은 결국 “집값은 내려가면 안 된다”는 뜻으로 들리기 쉽다. 바로 그 집착이 출산을 무너뜨리고 가계부채를 키우며, 나라 전체를 집값이라는 도박판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집값을 방어하는 정치가 아니다. 집값의 우상을 깨뜨리는 정치다. 개혁을 미루고 투기 구조를 비호하는 말들은 모두 나라를 살리는 길을 가로막는 ‘망국의 논리’일 뿐이다. 집값이 곧 민심이라는 정치가 반복되는 한, 한국 사회는 미래를 되찾을 수 없다.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를 “망국적”이라고 규정하며 억제 의지를 밝힌 것은 바로 이 절박한 현실을 겨냥한다. 부동산 망국병을 끊지 못한다면, 끝내 남는 것은 빈 아파트와 텅 빈 나라뿐이다. 집이 돈을 찍어내는 기계로 남는 사회는 끝내 사람을 남기지 못한다. 이제 지켜야 할 것은 집값이 아니라 사람이고, 아파트가 아니라 미래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집값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집값이 삶을 삼키는 구조를 끊어내는 것이다. 부동산 개혁은 특정 정권의 성과가 아니라, 공동체가 미래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사회, 청년이 빚에 눌리지 않고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나라, 이웃이 동네에 남을 수 있는 공동체는 결국 집값의 우상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개혁은 저항을 부른다. 그러나 지금 두려워해야 할 것은 개혁의 충격이 아니라, 개혁을 미루는 대가다. 집값을 지키려다 미래를 잃고, 아파트를 떠받치느라 나라의 생명줄을 끊는 사회를 더는 지속할 수 없다. 부동산 망국병을 끊어내는 일은 누군가의 손해가 아니라, 모두의 생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촛불과 응원봉을 들었던 주권자를 믿고, 부동산 개혁을 끝까지 완수하라.

댓글
«   2026/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최근에 올라온 글
글 보관함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