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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미국 국가방위전략(NDS)은 국방부를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명칭을 바꾼 뒤 처음 발표된 전략 문서다. 이는 미군의 정체성과 국가 전략 기조가 ‘방어 관리’에서 ‘전쟁 수행 능력의 우선화’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문건의 내용뿐 아니라, ‘전쟁부’라는 명칭 자체가 강력한 군사·전략적 메시지다.
NDS는 북을 여전히 한국·일본, 나아가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러나 대응 방식에서는 결정적 변화가 드러난다. 대북 억제의 주된 책임은 한국이 맡고, 미국은 “결정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전술 조정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미국과 한국의 역할을 재배치하는 전략적 전환의 공식 선언이다.
이 전환은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놓는다. 하나는 한국이 한반도 안보 사안의 전면에 서는 주권적 행위자로 이동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지배적 영향력은 유지한 채 직접 개입의 부담만 덜어내는 구조적 후퇴다. 관건은 이 변화를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느냐다.
미국은 NDS에서 한국을 “강력한 군사력과 높은 국방비, 견고한 방위산업, 징병제”를 갖춘 국가로 규정하며, 대북 억제의 주체가 될 역량과 의지를 모두 갖췄다고 명시했다. 한국 사회가 ‘자주국방’의 조건을 이미 충족했다는 이 평가는, 겉으로는 신뢰의 언어를 띠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더 이상 미국이 감당하지 않겠다는 고백에 가깝다. 주둔비 부담은 늘리면서, 직접 개입은 축소하고, 유사시에는 한국을 지역 분쟁의 전면에 세우려는 계산이 읽힌다.
따라서 쟁점은 자주국방의 방향이다. 자주란 미국이 떠넘긴 군사적 책임을 대신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되찾는 것을 뜻한다. 안보 영역뿐 아니라 대화와 긴장 완화, 관계 개선의 주도권까지 한국이 쥐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자주를 국방비 증액과 무기 도입, 대결의 ‘대리화’로만 이해한다면, 이번 ‘책임 전환’은 한반도를 오히려 더 위험한 국면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NDS가 강조하는 ‘제한적 미국 지원’은 미국의 영향력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 대신 한반도 문제의 책임을 지역 당사자에게 돌리겠다는 선언이다. 이를 남북이 직접 관계를 조정하고 긴장을 완화할 공간을 넓히는 기회로 잡아야 한다. 미국이 한 발 물러설수록, 남과 북이 나설 여지는 커진다.
민족자주의 관점에서 이번 변화는 분명한 기회이자 시험대다. 기회는 한반도의 운명을 스스로 설계할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고, 시험은 그 조건을 어떤 선택으로 구체화할 것인가에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중재를 요청하는 객체’가 아니라, 평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사회 내부의 제도와 인식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진정으로 지향한다면, 북을 적으로 전제해 온 헌법 제3조와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한미동맹 역시 성격 재정립이 불가피하다. 지금의 동맹은 한국에는 수탈과 종속을, 북에는 제재와 고립을 전제로 하는 비대칭 구조에 기반해 있다. 미국의 ‘책임 전환’ 선언은 이 동맹 질서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군사적 부담만 키우는 동맹의 연장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적대와 대결의 틀을 넘어, 공리공영을 목표로 하는 남북평화동맹으로 전환해야 한다. 군사주권의 회복, 동족을 적으로 규정한 제도의 폐기, 신뢰 회복과 협력 체제가 결합될 때, 이번 미국의 ‘책임 전환’은 민족자주와 통일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기가 될 수 있다.
대결의 구조를 유지한 채 책임만 떠안을 것인가, 아니면 제도와 동맹, 관계의 틀 자체를 바꿔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를 스스로 설계할 것인가. 선택은 주권자인 민(民)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