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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시위대에 보낼 총기를 쿠르드 경로로 보냈지만 중간에서 가로채였다”고 말한 사실이 4월 5~6일(현지시간) 잇따라 보도되면서, 미국이 내세워 온 ‘민주주의 지원’이라는 명분과 실제 개입 방식의 괴리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먼저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대목을 가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트럼프가 폭스뉴스 인터뷰와 백악관 행사 등에서 이란 시위대에 무기를 보내려 했고, 그 과정에서 쿠르드 경로를 거쳤다고 말한 점이다. 둘째, 이란 쿠르드 정당과 무장조직 인사들이 무기를 받은 적이 없다고 공개 부인하며, 그런 발언이 자신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반발한 점이다.
이 사안을 둘러싼 해석은 뚜렷이 갈린다. 트럼프와 미 행정부는 이란인들을 돕기 위해 무기를 보냈지만 중간에서 가로채였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란 당국은 시위를 외부가 조종한 무장 혼란으로 규정해 왔는데, 트럼프의 발언은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알자지라도 이 발언이 이란의 외부 배후설을 거드는 효과를 낳는다고 짚었다. 쿠르드 조직과 현지 인사들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은 무기를 받은 적이 없으며, 이런 발언이 자신들을 표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반발한다. 루다우는 쿠르드민주당 인사의 말을 인용해 이들이 가진 무기는 오래된 것이라고 전했다. 예루살렘포스트와 뉴스위크도 여러 쿠르드 정파가 무기 수수를 부인하며 보복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세 가지 프레임을 함께 놓고 보면, 무엇이 핵심인지 분명해진다. 미국이 정말 ‘배달사고’를 당했는지는 본질이 아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주권국가의 대중운동에 무기를 대어 정권교체나 내전을 꾀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주권자인 현지인을 한낱 도구처럼 여기는 발상이다.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서 내란을 부추기는 일이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선거 절차에만 가두지 않더라도, 한 사회의 민주 질서는 그 사회 구성원의 자주적 조직과 합의, 투쟁을 통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제1조 역시 모든 인민의 자기결정권을 명시하고 있다. 외부 국가가 무력으로 개입해 주권을 유린하면, 가장 먼저 죽고 다치는 쪽도 그 나라의 주권자다.
국가 간 관계에서도 기준은 같다. 유엔 헌장 2조 4항은 무력 위협과 무력 행사를 금지한다. 비개입 원칙도 ‘민주주의 수출’을 내세운 군사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말한다면 앞세워야 할 것은 주권 보호와 연대, 인도주의적 지원이지 반정부 무장세력에 무기를 대는 일이 아니다.
가디언과 AP, 로이터 보도를 보면, 전쟁 국면에서 쿠르드 무장세력을 새 전선으로 삼으려는 구상이 실제로 논의됐다. 이런 접근은 쿠르드 지역을 전면전의 대리 전장으로 만들고, 이란 내부에서는 소수민족 낙인을 키울 수 있다. 미국이 내세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에 이런 공작은 낯선 일이 아니다. 미 국무부 외교문서집에는 1970년대 초 이라크 정권을 흔들기 위해 쿠르드 세력을 지원하고, 무기를 이란을 거쳐 넘기는 방안이 검토되고 추진된 대목이 나온다. 당시 대상은 이라크 쿠르드였지만, 쿠르드를 매개로 지역 정권을 흔들려는 발상은 이번 논란과도 매우 닮아 있다. 이 기록은 ‘민주주의 지원’이 실제로는 전략 거점 확보와 지역 질서 관리의 명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란에서는 무기와 군사 개입이 거론됐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여론전과 음모론, 종교 네트워크와 연계한 정치 선동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 겉모습은 달라도, 외부 세력이 주권국가의 내부에 개입해 불신과 분열을 키우고 정치 혼란을 증폭시키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내부 균열을 키우고 체제 불안을 부추긴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지원이 아니라 주권 침해다.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사례다. 미국 마가 진영과 맞닿은 부정선거 담론이 인터넷과 광장을 통해 퍼졌고, 성조기 집회와 결합한 극우 복음주의 세력은 그 주장을 거리 정치로 조직해 왔다. 고든 창, 모스 탄, 프레드 플라이츠 같은 트럼프 진영 인사들이 한국의 선거와 계엄 국면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보태며 사실상 내정에 개입하는 모습도 이어졌다. 무기는 없었지만, 심리전과 음모론, 종교적 선동이 사회를 갈라놓고 민주적 절차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결국 이란과 한국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늘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통제하려는 나라의 균열을 키우고 내부 대립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개입해 왔다. 무기를 대든, 음모론을 퍼뜨리든, 종교와 여론전을 동원하든 본질은 같다. 주권자의 판단을 흐리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개입은 민주주의의 지원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파괴다.
그래서 이 글의 질문에 대한 답도 분명하다. 민주주의 지지와 내란 유도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내란의 불씨를 키우고 사회를 극단적 대립으로 몰아가면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이란에서도, 한국에서도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모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