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파키스탄이 이란과 미국에 ‘즉각 휴전,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15~20일 안의 최종 합의’를 뼈대로 한 중재안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란은 하루 만에 단기 휴전이 아닌 영구적 전쟁 종식을 전제로 한 10개 조항을 내놨다. 재공격 방지, 제재 해제, 재건 지원,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항해 제도화가 함께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4월 7일 오후 8시, 한국시간 4월 8일 오전 9시를 최종 시한으로 못 박고, 합의가 없으면 발전소와 교량 같은 민간 기반시설을 공격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휴전 중재가 아니다. 전기와 교통, 생계 기반을 겨눈 협박이다.

페르시아만의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혁명수비대가 카타르 액화천연가스 선박 2척의 통과를 허용했다가 다시 멈춰 세웠다. 이란에게 호르무즈 해협은 그저 뱃길이 아니다. 전쟁과 제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원과 물류를 틀어쥐려는 강대국의 압박에 맞서는 절박한 수단이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이 예전처럼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란은 선박 통과 조건을 조절하며 압박 수위를 관리하고 있다.

휴전은 멀고 합의는 가깝다
이란이 단기 휴전을 거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휴전은 상대가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줄 뿐이며, 재공격을 막을 보장도 없이 해협부터 열라는 요구는 사실상 항복 요구라는 것이다. 이란 외무부도 미국의 15개 항목 제안을 과도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하며, 위협과 최후통첩 아래서는 협상에 응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런 조건에서 휴전 합의가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

이란이 제시한 10개 조항 가운데 ‘호르무즈 안전항해 규칙’은 타협의 여지를 남긴다. 해협을 전면 개방하는 대신 통과 기준과 안전 절차, 검문 방식, 적용 대상, 예외를 먼저 정하는 방식이라면 이란도 이를 굴복이 아닌 해역 관리로 내세울 수 있다. 결국 당장 가능한 것은 단기 휴전보다 부분 합의다. 인도주의·필수 물자 통과 확대, 제한적 선박 통과의 상시화, 민생 목적의 일부 제재 완화가 우선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해협이 묻는 ‘전쟁의 값’
이번 사태의 핵심은 ‘항행의 자유’ 논쟁에 있지 않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까지 호르무즈 해협 통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트럼프가 민간 시설 공격 가능성을 거론한 직후, 국제적십자위원회 총재는 민간 필수 시설과 핵시설을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행태가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는 테러 대응이나 선제 방어가 아니며 전쟁 범죄일 뿐이다.

특히 부셰르 원전 타격은 협상 압박의 선을 한참 넘었다. 이란 원자력기구는 반복된 공격이 방사능 재난을 부를 수 있다고 항의했고, 국제원자력기구도 위성 분석을 통해 원전 경계 75미터 부근의 타격 흔적을 확인했다. 핵 비확산을 내세운 미·이스라엘의 침략이 오히려 핵 재난 위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제재를 멈춰라
며칠짜리 휴전은 호르므주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민간과 핵시설을 겨눈 공격과 위협을 당장 멈추고, 인도주의 지원과 필수품 반입 통로를 상시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어 해협의 안전항해 규칙을 단계적으로 합의하고, 모든 폭력적인 제재를 중단해야 한다. 그래야 휴전 논의가 종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불씨를 남겨둔 미봉책은 오래가기 어렵다. 총성이 잠시 멎더라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적대 정책과 제재 체제가 그대로라면 전쟁은 다른 형태로 이어질 뿐이다. 미국이 민간 기반시설 파괴로 압박 수위를 더 높인다면 충돌은 역내 에너지·담수화·물류 시설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반대로 군사행동 중단과 민생 제재 완화가 먼저 이뤄진다면, 해협 통과 확대와 부분 합의의 여지는 남는다. 출구는 더 강한 폭격이 아니라 전쟁과 제재를 함께 멈출 때 열린다.

말은 휴전, 실상은 점령
지금까지 미국이 내놓은 메시지는 한마디로 ‘휴전을 내세운 항복 요구’다. 결국 남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폭력과 수탈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의 통행료를 미국이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 국방장관은 “오늘이 전쟁 시작 이후 최대 규모의 타격”이라며 “내일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을 말하면서도 해협 통제와 추가 공습을 함께 꺼내 드는 태도는, 미국이 바라는 것이 긴장 완화가 아니라 확전과 중동 질서 장악임을 보여준다.

이란에서는 알리레자 라히미 청소년·체육부 차관이 청년들에게 발전소 주변에 인간 띠를 만들어 핵심 시설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폭격은 군사행동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맨몸의 민간이 최후의 수단으로 나선 상황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끝내 폭격을 강행한다면,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추궁과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전쟁의 본질은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쟁이 드러낸 본질은 정반대다. 핵무기를 쥔 나라들이 핵 없는 나라를 상대로 전쟁과 봉쇄를 강요하고 있다. 문제는 있지도 않은 이란의 핵이 아니라, 군사력을 휘두르며 타국의 주권과 생존을 짓밟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권 추구다.

오판의 대가는 미국의 몫이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정치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미국의 오판이었다. 핵 비확산과 안보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드러난 것은 중동 전체의 불안정 심화와 에너지·물류 질서의 교란이다. 이란을 압박해 질서를 되찾겠다는 계산은 오히려 미국에 더 큰 비용과 더 깊은 고립만 안기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전쟁을 시작한 쪽은 이란이 아니다. 따라서 전쟁을 멈출 책임도 미국과 이스라엘에 있다. 공격한 쪽이 먼저 멈추고, 파괴한 쪽이 복구와 배상, 민간 인프라 공격과 핵시설 위협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트럼프는 이번 전쟁을 애써 성과로 포장하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제국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켰고, 중동의 평화를 어떻게 파괴했으며, 국제사회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빠짐 없이 기억할 것이다. 미국의 이란 침략은 제국주의 모순이 극점에 이른 끝에 스스로 패권 쇠퇴를 앞당긴 사건으로 세계사에 새겨진다. 호르무즈의 자주와 평화는 일시적 휴전이 아니라 전쟁과 제재를 끝내는 데서 시작되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데서 비로소 완성된다.

댓글
«   2026/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글 보관함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