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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3일 경기 연천 접경지역 산불 진화 과정에서 육군 수리온 헬기 1대가 비무장지대에 우발 진입했다. 남북관계가 최악의 적대 관계로 퇴행한 상황에서, 북측이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은 것은, 적어도 산불 진화라는 긴급한 목적을 일정하게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는 재난 대응의 긴급성보다 사전 승인 절차를 먼저 문제 삼았다. 불길이 번지는 급박한 순간에도 유엔사 허가가 없으면 아무 조치도 할 수 없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전협정을 보면, 산불 진화 같은 재난 대응은 오히려 비무장지대 출입이 허용될 수 있는 대표적 경우에 속한다. 정전협정 제1조 9항은 비무장지대 출입을 원칙적으로 막으면서도 예외적으로 민사행정과 구제사업 종사자의 출입을 열어두고 있다. 10항은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에서 이 업무의 책임을 유엔군사령관에게 둔다. 본래 취지는 비무장지대를 완전히 봉쇄된 공간으로 만들기보다, 최소한의 행정과 구호 활동은 가능하게 해 전면적인 군사화를 막는 데 있었다.

문제는 이 취지가 현실에서는 거꾸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정전협정은 비무장지대 출입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고, 유엔사 규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결과 남측 비무장지대의 출입 승인 권한은 사실상 유엔사 손에 넘어갔다. 구제사업마저 긴급한 공공 대응이 아니라 사전 승인 대상으로 취급돼 온 것이다. 이번 산불 때도 산림청 헬기는 사전 승인을 받았지만, 육군 헬기는 그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난 대응의 속도가 현장 판단이 아니라 기관별 절차와 승인 체계에 좌우되는 허술한 현실이 다시 드러났다.

이 대목에서 다시 물어야 할 것은 유엔사의 실체다. 유엔사는 이름과 달리 유엔이 직접 지휘하는 기구가 아니다. 1950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만들어진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사령부였고, 유엔이라는 이름은 그 전쟁지휘 체계 위에 덧씌워졌다. 출범부터 유엔의 통상적 평화유지 활동과는 성격이 달랐다.

유엔이 유엔사를 정식 기구로 분명히 인정해 온 것도 아니다. 1994년 유엔 사무총장 보고서에는 안보리가 이 통합사령부를 설치한 것이 아니며, 해체 문제도 유엔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판단할 사안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이는 유엔사가 유엔의 정식 기구라는 통념이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준다.

1975년 유엔 총회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유엔사 해체를 필요 사항으로 적시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 결의는 집행되지 않았다. 이는 유엔사가 유엔의 통제 아래 있는 조직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존속해 왔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 “가짜 유엔사”라는 비판이 이어져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 깃발은 이런 허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엔 깃발 규정은 정부나 단체, 개인이 유엔기를 사용할 때 유엔과 공식 관계가 있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엔과의 관계가 불분명한 유엔사가 비무장지대와 기지 곳곳에 유엔기를 상시적으로 내거는 것은 사실상 도용에 가깝다. 이는 유엔의 외피를 두른 채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구지배 구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비무장지대 안에서 군사 활동을 ‘민정경찰’이라는 이름으로 우회해 온 관행도 같은 모순을 드러낸다. 정전협정은 군사적 출입을 제한하되 민사와 구호 활동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군 병력을 ‘민정경찰’로 바꿔 부르는 방식이 굳어졌고, 유엔사는 이를 다시 넓혀 최전방 경계와 지상군 임무까지 포괄해 왔다. 비무장을 위해 만든 공간이 상시 경계의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비무장지대는 군사작전의 공간이자 영구분단의 장벽으로 굳어졌다. 한반도 평화를 뒷받침하고 장차 통일을 준비하며, 삶과 생태, 교류의 공간으로 되돌리려는 노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런 점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이른바 디엠제트법은 단순한 관리법이나 제도 손질이 아니라, 분단 구조를 넘어서는 걸음마가 될 수 있다. 이 법안들은 비무장지대의 생태·문화적 가치를 지키면서 평화적 이용을 제도화하고, 통일부 장관을 중심으로 종합계획과 위원회, 지구 지정 체계를 마련해 군사 통제 중심의 관리 방식을 바꾸려 한다. 특히 사업 승인 권한을 국내 행정체계로 돌리고, 출입과 통행의 안전과 신속한 절차를 정부 책임으로 못박으려는 점이 중요하다. 재난 대응과 조사, 생태 보전 같은 비군사 영역을 우리 사회가 직접 책임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엔사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승인 없이 비무장지대 내 민간인 출입을 허용하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정부와 주권자들은 정전협정이 군사적 합의인 만큼, 비무장지대의 비군사적 이용까지 가로막을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맞서고 있다. 시민사회와 법률가 단체들 역시 이를 사실상 주권침해로 규정하며, 출입 통제 권한을 거두고 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

이번 산불 헬기 사건은 쟁점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분 단위 대응이 필요한 구제사업마저 유엔사 내부 결재선에 묶여 있다면, 이는 단순한 절차 문제가 아니다.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이 외부 군사통제 체계에 종속돼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정전협정 어디에도 모든 구제사업에 유엔사의 사전 승인을 의무화한 조항은 없다. 결국 현장을 움직여 온 것은 정전협정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덧씌워진 유엔사 규정과 관행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통치 권한에 있다. 재난 대응과 생태 보전, 민간 통행 같은 비군사 영역까지 유엔사라는 이름 아래 미군 지휘체계가 좌우하고 있다면, 이는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다. 유엔과 무관한 사실상 미군의 통제장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엔사가 일본의 후방기지를 발판으로 한미일 군사협력 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현실까지 보면, 비무장지대 통제는 결코 정전 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군사분계선 통과와 후방 병참, 동아시아 미군 전략이 한데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남북 민(民)의 안전과 생태, 교류보다 대결 관리와 군사적 효율이 앞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진화 헬기 출입 같은 각론의 손질이 아니다. 비무장지대의 질서를 누가 결정하고 책임질 것인가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유엔의 이름 아래 미국의 지휘로 움직여 온 이 통제장치를 걷어내고, 비무장지대를 전쟁 관리의 공간에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공공영역으로 돌려세워야 한다.

결론은 분명하다. 미국이 유엔의 간판 아래 비무장지대를 통제해 온 시대는 끝나야 한다. 남은 수탈하고 북은 제재하는 낡은 한미동맹 질서를 넘어, 남북이 함께 이익을 나누고 미래를 열어가는 남북평화동맹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무장지대를 전쟁의 경계선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 통일의 터전으로 돌려세우는 일, 그것이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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