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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미국 국민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이 과연 미국 국민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따져 보자고 촉구했다.
서한은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을 분리해 호소한다. 그는 이란이 근대사에서 침략과 팽창, 식민 지배를 선택한 적이 없고, 전쟁을 먼저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란 인민은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인민에게 적의를 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란을 위협으로 규정하는 서사는 강대국이 압박과 군사적 우위, 군수산업의 이해, 전략 시장 통제를 정당화하려고 만들어 낸 결과라고 주장했다.
페제시키안은 적대의 출발점으로 1953년 쿠데타를 들었다. 이어 샤 정권 지원, 1980년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지원, 장기 제재, 협상 국면에서의 군사공격을 차례로 거론하며 불신이 쌓여 왔다고 했다. 또 “이란은 협상했고 합의를 이행했지만, 합의를 깨고 대결을 키운 쪽은 미국 정부였다”고 지적했다.
서한은 특히 민간인 피해와 생활 기반 파괴를 정면으로 문제 삼는다. 그는 에너지·산업 시설 같은 핵심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이 곧 이란 인민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며, 이를 전쟁범죄라고 주장했다. 또 무고한 어린이의 희생과 암 치료 의약품 시설 파괴를 언급하며, 한 나라를 ‘석기시대로 되돌리겠다’는 식의 폭격 위협이 미국의 국제적 위신만 깎아내릴 뿐이라고 반문했다. 전쟁의 정당성은 안보 논리가 아니라 인민의 생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이 서한의 의미는 협상 채널이 겉으로는 유지되고 있지만, 트럼프의 반복된 거짓말과 기만으로 실질적 대화가 멈춘 상황에서 미국 내부 여론에 직접 호소했다는 데 있다. 페제시키안은 전쟁 비용을 떠안는 미국의 납세자와 병사 가족을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그 전쟁이 이란 민중의 삶에 남기는 파괴도 함께 부각했다. 이는 휴전과 외교 재개의 필요성을 미국 사회 안에서 다시 묻게 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전쟁을 멈추려면 민간인과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즉각적인 휴전, 인도주의 통로 보장, 제재와 봉쇄가 초래한 생활 파괴의 단계적 완화, 외교 복귀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 결국 이 서한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대결이 길어질수록 대가를 치르는 쪽은 양국 지배층이 아니라 양국의 민(民)이라는 점이다. 공개서한 전문을 소개한다. / 편집자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서한(번역)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미합중국 국민 여러분, 그리고 왜곡과 조작된 서사가 범람하는 가운데서도 진실을 찾고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이란은 그 이름과 성격, 정체성 그 자체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이어져 온 문명 가운데 하나이다. 이란은 역사적·지리적 이점을 지닌 시절도 있었지만, 근대사에서 침략과 팽창, 식민주의, 지배의 길을 택한 적이 없다. 세계 강대국들로부터 점령과 침공, 지속적인 압박을 견뎌 왔고, 이웃 여러 나라들에 비해 군사적 우위를 갖고 있었던 때에도, 이란은 전쟁을 먼저 시작한 적이 없다. 다만 공격을 받았을 때에는, 침략자들을 단호하고 용감하게 격퇴해 왔다.
이란 인민은 미국과 유럽, 이웃 나라의 인민을 포함해 다른 나라 인민에게 원한을 품지 않는다. 자부심 높은 역사 속에서 외세의 반복된 개입과 압력을 겪으면서도, 이란인들은 언제나 정부와 그 정부 아래 사는 인민을 분명히 구분해 왔다. 이는 일시적 정치 입장이 아니라, 이란 문화와 집단의식에 깊이 뿌리내린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란을 ‘위협’으로 묘사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에도, 오늘 확인되는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그런 인식은 강대국이 압박을 정당화하고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며 군수산업을 떠받치고 전략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적을 만들어 낸 결과다. 이런 환경에서는 위협이 존재하지 않으면, 위협을 발명해 낸다.
바로 이런 틀 속에서 미국은 이란 주변에 최대 규모의 병력과 기지, 군사역량을 집중시켜 왔다. 적어도 미국 건국 이래, 전쟁을 먼저 시작한 적이 없는 나라가 이란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란을 둘러싼 군사 포위망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최근 이 기지들에서 출격한 미군의 공격은 이런 군사 주둔이 실제로 얼마나 큰 위협인지 보여 줬다. 이런 조건에 놓인 어느 나라든 방어 능력 강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란이 해 온 일, 그리고 지금도 하는 일은 정당방위에 기초한 절제된 대응일 뿐이다. 전쟁이나 침략을 먼저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가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며, 이란과 미국 인민 사이의 초기 교류도 적대나 긴장으로 얼룩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환점은 1953년 쿠데타였다. 이란의 자원 국유화를 막으려 한 미국의 불법 개입이었고, 그 쿠데타는 이란의 민주적 과정을 무너뜨려 독재를 복원했으며, 이란인들 사이에 미국 정책에 대한 깊은 불신을 뿌리내리게 했다. 그 불신은 샤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 1980년대 ‘강요된 전쟁’(이라크-이란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에 대한 미국의 지원, 근대사에서 가장 길고 포괄적인 제재의 부과, 그리고 끝내는 협상 중에—두 차례나—이란을 겨냥해 도발 없이 감행된 군사 침략으로 더 깊어졌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압박은 이란을 약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이란은 여러 영역에서 더 강해졌다. 문해율은 이슬람혁명 이전 약 30% 수준에서 오늘날 90%를 넘는 수준으로 높아졌고, 고등교육은 비약적으로 확대됐다. 현대 기술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고, 보건의료 서비스는 개선됐으며, 기반시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와 규모로 발전했다. 이는 조작된 서사와 무관하게 분명히 확인되는 현실이다.
동시에 제재와 전쟁, 침략이 이란 인민의 삶에 남기는 파괴적이고 비인도적인 영향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계속되는 군사적 침략과 최근의 폭격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깊이 흔든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분명하다. 전쟁이 삶의 터전과 도시, 미래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길 때, 사람들은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이 전쟁은 도대체 미국 국민의 어떤 이익을 위해 벌어지고 있는가? 이란이 그런 행태를 정당화할 만한 객관적 위협이었던 적이 있는가? 무고한 아이들의 학살, 암 치료 의약품 생산 시설의 파괴, 한 나라를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폭격을 자랑하는 일이, 미국의 국제적 위신을 더 훼손하는 것 말고 대체 무엇을 달성하는가?
이란은 협상을 추진했고, 합의에 이르렀으며, 모든 약속을 이행했다. 그 합의에서 탈퇴하고, 대결로 치닫고, 협상 도중 두 차례 침략 행위를 감행한 것은 미국 정부가 내린 파괴적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외부 침략자의 망상만 뒷받침했을 뿐이다.
에너지·산업 시설을 포함해 이란의 핵심 기반시설을 공격하는 일은, 이란 인민을 직접 겨냥하는 것이다. 이는 전쟁범죄일 뿐 아니라, 그 여파는 이란 국경을 훨씬 넘어선다. 불안정을 낳고 인명·경제적 비용을 증대시키며, 긴장의 악순환을 지속시키고, 수년간 사라지지 않을 원한의 씨앗을 뿌린다. 이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다. 전략적 혼란과 지속 가능한 해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의 징표다.
또 미국이 이 침략에 이스라엘의 대리자처럼 뛰어들었고, 그 정권의 영향과 조종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틀린 말인가. 이스라엘이 ‘이란의 위협’을 부풀려 팔레스타인 인민을 향한 자국의 범죄에서 세계의 시선을 돌리려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이 이제 ‘마지막 미국 병사’와 ‘마지막 미국 납세자 달러’까지 끌어다 이란과 싸우려 하며, 그 망상의 부담을 이란과 이 지역, 나아가 미국 자체에 떠넘기려 한다는 점이 명백하지 않은가? 이는 불법적 이익을 좇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오늘 미국 정부의 우선순위에 ‘아메리카 퍼스트’가 정말 포함돼 있는가?
나는 여러분에게, 이 침략을 떠받친 허위정보의 틀을 넘어, 이란을 다녀온 이들과 직접 대화해 보기를 권한다. 이란에서 교육을 받고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거나, 서방의 첨단 기술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수많은 이란 출신 이주민을 보라. 이런 현실이 과연 여러분이 이란과 이란인에 대해 들어 온 왜곡된 이야기와 일치하는가.
오늘 세계는 갈림길에 서 있다. 대결을 이어 갈수록 대가는 커지고 남는 것은 없다. 대결과 관여는 분명히 다른 선택이며, 그 결과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선택의 결과는 다음 세대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이란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숱한 침략을 겪고도 끝내 살아남았다. 침략자들에게 남은 것은 역사에 오명으로 남은 이름뿐이다. 이란은 지금도 존엄과 자부심을 지키며 굳건히 서 있다.
역자 주: 원문의 알라는 아랍어로 ‘하느님’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 ‘하느님’은 미국인에게 맞춘 표현이 아니라 원뜻을 따른 번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