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중동 전쟁이 길어지면서 유가가 일상을 덮쳤다. 2026년 3월 국제 유가의 기준 지표인 브렌트유 가격이 한 달 새 63%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커지고 해상 운송 차질 우려가 번지자, 그 충격은 곧바로 휘발유값과 물류비,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멀리서 일어난 전쟁의 대가는 결국 서민의 지갑을 파고든다.
이재명 정부가 26조2000억원 규모의 ‘전쟁 추경’을 편성하고, 소득 하위 70%에 1인당 10만~60만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석유 최고가격제, K-패스 확대,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급을 묶은 대책의 핵심은 분명하다. 유가 급등의 충격을 빨리 흡수하고, 타격이 큰 계층과 부문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 문제를 민생이 아니라 ‘상위 30% 배제’의 문제로 끌고 갔다. 안철수 의원은 “세금은 90%를 부담하는데 지원금은 제외되는 30%의 국민”이라고 했고, “세금을 낼 때만 국민이고 정책 지원에는 그림자”라는 말까지 보탰다. 그러나 “상위 30%가 소득세의 90%를 부담한다”는 수치에는 정작 본인 스스로 “추측건대”라고 단서를 달았다. 근거도 불분명한 수치로 배제의 프레임을 짠 것이다.
이런 주장은 결국 정치적 갈라치기로 작용한다. 정부가 지급 대상을 하위 70%로 잡은 이유는 이미 제시됐다.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고유가 충격이 번지고 있고, 기준을 50%로 낮추면 ‘받는 중산층’과 ‘못 받는 중산층’ 사이의 단절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지급 기준은 건강보험료를 활용하고, 지급 방식도 지역화폐나 카드 등으로 지역 상권에 효과가 돌아가도록 설계했다. 따져야 할 것은 ‘누가 국민인가’가 아니라, 기준이 타당한지, 지원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다.
국민의힘의 문제는 이런 프레임만이 아니다. 태도도 일관되지 않다. 2024년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둘러싼 공방 때, 국민의힘은 국민 70~80%를 선별 지원하는 안조차 사실상 전 국민 지급과 다를 바 없다며 ‘현금 살포’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2026년에는 하위 70% 지급 방침을 두고 “왜 30%를 빼느냐”고 따진다. 선별 지원을 반대하더니, 이제는 선별 기준을 문제 삼는다. 민생에 대한 원칙은 보이지 않고, 반대를 위한 논리만 그때그때 달라진다.
지역화폐를 둘러싼 태도도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은 2026년도 예산 심사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을 두고 “포퓰리즘성 현금 살포”, “지방선거를 앞둔 예산”이라고 공격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 추경에서 피해지원금이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될 가능성이 커지자, 이번에는 ‘상위 30% 배제’를 앞세워 정쟁을 건다. 얼마 전까지는 “선거용 살포”라던 입이, 불과 몇 달 뒤 “왜 우리(상위)를 빼느냐”로 바뀌었다.
고유가와 고물가는 이미 깊어진 국내 양극화 구조 위에서 더 거세게 작동하고 있다. 임금은 제자리인데 생활비는 오르고, 자영업은 회복되지 않았으며, 부채만 쌓이고 있다. 같은 유가 인상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집과 버티기 어려운 집의 격차는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받느냐’는 소모적 공방이 아니라, 전쟁이 키운 물가 충격을 누가 어떻게 떠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부담을 덜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문제의 원인을 짚기보다, ‘지원금을 받는 다수’와 ‘못 받는 소수’의 대립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정치적 노림수는 뻔하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흔들리고 당 안팎의 위기감이 커지는데 별 다른 돌파구가 없다. 가장 쉬운 방식은 분노의 대상을 만드는 일이다. 지원금 설계를 조정하기보다,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을 갈라 박탈감을 키우는 방식이다. 그렇게 민생 대책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는다. 안철수가 불을 붙인 지원금 논쟁은 그저 ‘누가 더 억울하냐’는 소모적 대립으로 흐를 뿐이다. 정치는 이런 악순환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그 구조를 바로잡는 데 힘을 써야 한다.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을 옹호하고자 한다면, 상위 30%의 박탈감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전쟁발 물가 충격이 임금과 자영업 매출, 가계부채로 전가되는 경로를 끊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전쟁 국면에서 초과이익을 누리는 정유·에너지·물류 부문을 어떻게 다룰지, 대중교통과 공공에너지의 안전망을 어떻게 넓힐지, 지역화폐를 둘러싼 정쟁을 멈추고 영세 상권과 저소득 가구의 구매력을 어떻게 회복할지 답해야 한다. 나아가 비정규·플랫폼 노동, 취약한 자영업 구조,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처럼 오래 쌓여온 불평등의 고리를 함께 끊어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를 방치하는 정치는 더는 민생을 말할 자격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원금을 둘러싼 편 가르기가 아니다. 전쟁의 확전을 막고, 에너지와 물류의 공공적 통제력을 높이며, 그 충격을 더 이상 약한 이들에게 떠넘기지 않는 정치다. 국민의힘의 ‘반대를 위한 반대’는 정작 이 과제를 가리고 있다.
민(民)은 윤석열의 12·3 내란 사태에서 국민의힘이 보인 행보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고유가 민생 위기마저 갈라치기의 재료로 삼는 배신과 분열의 정치 역시 그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주권자들은 그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