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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아일랜드 리머릭에서 결성된 크렌베리스는 보컬리스트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 기타리스트 노엘 호건(Noel Hogan), 베이시스트 마이크 호건(Mike Hogan), 드러머 퍼걸 롤러(Fergal Lawler)로 구성된 4인조 얼터너티브 록 밴드다. 해맑다가도 우수에 잠기고 어느새 몽환의 세계로 날아가는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자유분방한 목소리에 힘입어 무명 밴드는 순식간에 지구별 슈퍼스타로 떠오르고,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중경삼림 OST에 사용된 Dreams, 개그 콘서트 <두근두근> 코너 도입부로 잘 알려진 Ode to my family,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Zombie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일랜드는 무려 8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916년 부활절 무장 궐기가 잉글랜드군의 폭력 진압으로 좌절된 이후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을 결성해 치열하게 독립전쟁을 벌인 끝에 자치권을 얻어 주권을 되찾는가 싶었지만 북아일랜드가 영국 연방에 남으면서 분단되고 만다. 영국에서 이주한 앵글로색슨족이 북아일랜드 토지의 95%를 소유하는 등 기득권을 장악하는 동안 식민지 소작농으로 전락해 차별과 가난에 시달리게 된 원주민 켈트족은 본토로부터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혹독한 탄압을 받는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갈등은 아일랜드인에게는 앵글로색슨족에 대한 반제국주의 조국해방 투쟁의 의미를 가지고, 영국인에게는 그저 카톨릭교와 개신교(성공회) 사이의 종교 갈등으로 가볍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IRA는 아일랜드인의 관점에서는 독립군이고 영국인의 관점에서는 테러집단이다. IRA와 영국군 간에 피를 부르는 도살과 복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1977년 아일랜드공화사회당 당수가 총격으로 사망하고, 1979년에는 영국 왕실의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이 암살된다. 1993년 워링턴에서 IRA의 폭탄 공격으로 두 명의 무고한 아이가 희생되는데, Zombie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곡이다.
또 다른 머리가 하찮게 매달리고
아이는 천천히 죽어가네.
폭력이 이런 침묵을 낳았지.
실수를 범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하지만 봐. 나도 내 가족도 책임이 없지.
그들은 싸우고 있어. (네 머리 속에서, 네 머리 속에서)
탱크와 폭탄으로
폭탄으로 총으로
그들은 죽어가. (네 머리 속에서, 네 머리 속에서)
너의 머리 안에
좀비가 있다고.
이봐, 머리 안에 뭐가 있는 거야?
네 머리 안에 말야.
당신은 좀비야.
어머니들의 찢겨진 마음이 계속 이어져.
폭력이 침묵을 낳으면서 말이야.
우린 분명 뭔가 잘못된 거야.
1916년부터 똑같은 주제가 계속되고 있어.
그들은 싸우고 있지. 네 머리 속에서, 네 머리 속에서
탱크와 폭탄으로
폭탄으로 총으로
그들은 죽어가지. 네 머리 속에서, 네 머리 속에서
네 머리 속, 네 머리 속에
좀비가 살아.
이봐, 머리 안에 뭐가 있는 거야?
네 머리 안에 말야.
당신은 좀비야.
다음은 1994년 발표된 크렌베리스의 Zombie 영상이다. 가사는 IRA의 폭력 노선을 비판한 것 같기도 하고,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많은 이들이 희생당하는데 나와 내 가족의 일이 아니라고 눈 감는 이들에게 '폭력에 침묵하는 당신은 좀비인가?'라고 외치는 것으로도 들린다. 아일랜드 역사에 대한 이해, 듣는 이의 입장에 따라 곡은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고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아일랜드 리머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도롤레스 오리어던은 8세 때 아버지 지인으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는 등 불우한 성장 과정을 딛고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장하지만, 내면의 상처는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혔고 이혼 후 알코올 의존증과 대인기피증, 우울증으로 고통받는다. 2013년에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살아난다.
---- 절 취 선 ----
2018년 미국의 신생 5인조 헤비메탈 밴드 Bad Wolves가 Zombie를 리메이크하기로 한다. 마침 소속사 Eleven Seven Music의 CEO 앨런 코백(Allen Kovac)은 과거 크렌베리스의 매니저였다. 자신의 소속 밴드가 이 곡을 부르려는 것을 안 앨런 코백은 돌로레스에게 직접 연락해 녹음을 함께 해줄 것을 부탁하고, Eleven Seven Music의 국제 관리담당자인 댄 웨이트(Dan Waite)가 1월 15일 영국 런던의 스튜디오에 녹음 일정을 잡으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댄 웨이트 역시 돌로레스의 오랜 친구였는데 안타깝게도 이로 인해 미래는 바뀌게 된다. 돌로레스의 분량을 제외한 모든 녹음을 마친 Bad Wolves는 슈퍼스타와의 감격적인 만남을 기다리고, 돌로레스 역시 녹음 전날인 14일 자정 댄 웨이트에게 'Bad Wolves의 Zombie가 너무 좋고, 스튜디오 녹음이 기대된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다음 날 오전 9시 5분 파크레인의 한 호텔에서 40대 중반 여성이 사망했다는 신고가 런던경찰에 접수된다. 욕조에 빠진 채 숨져있는 여성은 돌로레스였다. 8개월 후 부검 결과가 발표되는데, 사인은 과다음주에 의한 익사로 욕조에서 잠들었다가 물속에 잠겨 사망했고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무려 0.33에 달했다. 녹음 전날 무슨 일로 그렇게 많은 술을 마셨을까?
Bad Wolves는 그토록 고대하던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목소리를 넣지 못한 채 자신들의 Zombie를 발표하고, 수익금을 남겨진 자녀들에게 기부한다. 사망한 돌로레스를 대신해 유리로 단절된 반대편 벽에서 전신에 금분을 칠한 대역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데, 고인을 애도하며 손을 맞대고 교감하는 장면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눈물 주의. 미리 물을 많이 먹고 감상하시라.
다음은 Bad Wolves의 Zombie 영상이다.
돌로레스 오리어던과 함께 1993년 워링턴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한다. 조나단 볼(Johnathan Ball, 3세)은 부모와 함께 어머니날 카드를 사러 나왔다가 참변을 당했다. 팀 패리(Tim Pary, 12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5일 후 생명연장장치를 끄면서 사망했다. 이 아이들은 아무런 죄가 없었다.
돌로레스 오리어던은 지구별에서의 여정을 마쳤다. 독실한 무신론자인 나는 천국을 믿지 않지만 그곳이 정말로 있어서, 그녀가 희생된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