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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지라에 실린 자바드 자리프 전 이란 외무장관의 기고문은 최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략전쟁에 군사기지를 제공한 걸프 국가들의 선택을 ‘전략적 오판’으로 못 박는다. 돈을 주고 외세에 맡긴 안보는 위기 앞에서 무너졌고, 전후 중동 질서도 그 실패 위에서 다시 짜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자리프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미군 기지를 내주고 작전을 지원해 침략에 사실상 가담했으며, 이란의 대응은 주권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이었다고 강조한다. 그가 제시한 교훈은 분명하다. 이웃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무기 구매와 미군 기지 유치로 안보를 ‘사려’ 한 모델은 한계가 드러났다. 미군 기지는 이란에 실존적 위협이며, 역내에서 커지는 이스라엘의 영향은 국가 주권을 갉아먹는다. 해법으로는 호르무즈 평화구상(HOPE) 등 이란의 구상을 다시 꺼내 들며, 역내가 주도하는 포용적 안보 협력망으로 갈아타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 글의 의의는 전쟁의 책임과 비용을 역내에 떠넘기며 영향력을 유지해온 미국, 그 위에 올라탄 이스라엘의 구조를 정면으로 겨눴다는 데 있다. 동시에 이란이 더 이상 일방적 제재와 군사 압박을 견디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현실도 분명히 한다. 결론은 한 줄로 모인다. 중동 질서는 ‘밖에서 사오는 안보’가 아니라, 역내가 스스로 만드는 안보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이 글은 자바드 자리프가 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란 전 부통령·외무장관으로 외교를 총괄했고, 이란 핵합의(JCPOA)를 공동 설계한 당사자다. / 편집자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전쟁은 외부가 떠받치는 안보의 한계와, 역내가 외세에 의존할 때 생기는 위험을 드러냈다."
자바드 자리프
테헤란대학교 글로벌스터디 교수, 이란 전 부통령·외무장관, 이란 핵합의 공동 설계자
걸프협력회의(GCC)는 최근 성명에서 “이란의 공격으로 인해 GCC 회원국들은 이란에 대한 신뢰를 크게 잃었으며, 이란이 주도적으로 나서 진지하게 신뢰 회복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지역에서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은 높고도 반드시 필요한 목표다. 이란은 그동안 이 문제에서 늘 먼저 손을 내밀어 왔다. 다만 오늘의 유감스러운 상황에 이르기까지 각 당사자가 어떤 몫을 했는지, 모두가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란에 대한 도발 없는 침략은 노골적인 오판과 실수의 산물이었다. 이란이 약해졌고, 따라서 핵보유국 두 나라가 대규모 공격을 퍼붓고 여기에 역내 행위자들까지 가세해도 이란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에 기대어 움직였다. 워싱턴과 텔아비브, 그리고 일부 역내 수도의 정책결정자들은 경제 압박, 파괴공작, 은밀 작전, ‘수뇌부 제거’, 무차별 전쟁범죄를 신속히 밀어붙이면 이슬람공화국을 꺾고 이란의 대응 여지를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는 달랐다. 절제됐지만 단호했던 이란의 대응은 군사적 버팀목뿐 아니라, 역내를 넘어 훨씬 넓게 파장을 일으킬 규모로 반응할 수 있는 역량까지 보여줬다.
GCC의 아랍 이웃들도 이런 오판에 큰 책임이 있다. 이란 역시 그들이 잘못 판단하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이들은 지난 50년 동안 줄곧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섰다. 사담 후세인의 침략을 지원했고, 이스라엘이 이란 내에서 한 아랍 지도자를 살해한 뒤 이란이 자위 차원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이스라엘을 돕기까지 했다. 일부는 미국에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을 부추기며, 미국의 공격 대상 목록에 이란 해군까지 올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대가로 그들은 자국 영토에 미군 기지를 설치하도록 허용했고, 그 기지들은 이란을 향한 여러 침략 행위와 전쟁범죄를 실행하고 지원하는 거점이 됐다.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와중에도 공개적으로 미국 편에 섰다. 이는 사담 후세인이 이란인과 이라크 쿠르드 민간인에게 화학무기를 쓸 때 ‘무슬림 형제자매’였던 이들이 사담 편을 들었던 쓰라린 기억을 이란인들에게 떠올리게 했다. 이 불법 공격으로 이란 국민은 막대한 인명·재정 피해를 입었다. 그 공격은 우리 아랍 이웃들의 주권 영토에서 의도적으로 시작됐고, 그 영토를 통해 지속됐다. 미국이 민간인 거주 지역과 핵심 기반시설을 겨냥해 이란 민간인에게 조직적 전쟁범죄를 저지르려 준비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조차, 그들은 자국의 땅과 영공, 군사시설이 그런 범죄에 쓰이지 못하도록 막거나 제한하려 하지 않았다.
GCC 일부 이웃들은 이란이 무력화돼 대응하지 못하거나, 자국들이 이란의 영토 보전은 물론 존재 자체를 노린 침략에 공모했는데도 이란이 계속 눈감아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 기대는 비극적인 착각이었다. 이란은 마지못해, 그러나 끝까지 계산된 절제 속에서, GCC 회원국 영토에서 발사됐거나 그 영토를 통해 병참 지원을 받은 공격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웃들이 과거를 왜곡해 보거나 스스로를 피해자로만 내세우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지금 우리 지역은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이번 충돌은 ‘수입한 안보 체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토착적 힘과 역내 안보 협력망이 얼마나 끈질긴지 드러냈다. 어제의 동맹에 더 깊이 기대기보다, 형제자매인 역내 국가들은 잠시 멈춰 다시 따져봐야 한다. 이번 일을 제대로 읽어내면, 미래는 자립, 역내 주도권, 포용적 안보 협력망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닿는다.
첫째, 이란과 아랍 이웃은 이 땅에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란은 거의 50년 동안 제재, 외부가 지원한 테러, 하이브리드 전쟁, 심지어 ‘수뇌부 제거’까지 견뎌냈다. 다양한 구성의 국민이지만, 외세 개입 앞에서는 반복해서 국기 아래로 모였다. 테헤란은 존재를 위협하는 공격에 맞설 수단을 갖고 있고, 지리적 조건은 한계선이 넘어가면 세계 시장에 치명적 충격을 줄 수 있는 지렛대를 이란에 쥐여준다. 이란이 너무 오랫동안 절제해 온 탓에, “호르무즈 해협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다. 하지만 이란은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미국의 제재로 사실상 해협을 누리지 못했다. 그 제재에서 이웃들은 큰 이익을 보며, 이란 형제들에게 강요된 불법적 고통 위에 부를 쌓았다.
더 중요한 점은 이란의 힘이 외부에서 수입된 인공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천 년 이어진 문명국가의 역사, 풍부하고 응집력 있는 문화, 젊고 교육받은 인구, 그리고 외세 지배에 맞서온 세월 속에서 다듬어진 생존 본능 같은, 바꿀 수 없는 토대 위에 서 있다. 어떤 외부 압박도 이 기반을 바꾸지 못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이란의 몰락에 베팅하는 이웃들은, 지리와 역사와 인구를 무시한 책임을 결국 스스로 져야 한다.
둘째, 일부 아랍 국가가 택한 ‘안보-개발 모델’은 근본부터 흔들렸다
오랫동안 공식은 단순했다. 최첨단 미국 무기를 비싼 값에 사들이고 미군 기지를 유치하고, 심지어 이스라엘 정보·테러 거점까지 받아들여 ‘수입된 안보’로 우산을 만든 뒤, 그 아래에서 외국 자본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모델은 실제 안보도, 지속 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안정감도 만들지 못했다.
일부 아랍 수도가 같은 무슬림 국가를 상대로 미국과 이스라엘 편에 섰다는 인식은 이슬람 세계에서 그들에게 오명을 남겼다. 여기에 미국 대통령이 그들을 향해 던진 거칠고 깔보는 듯한 발언이 겹치면서 상처는 더 커졌다. 이제 워싱턴이 “이스라엘을 위해, 그리고 이웃들의 희생 위에서 시작된 전쟁 비용을 이웃들에게 떠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이 관계의 냉소가 더 분명해졌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이 실패한 모델에 더 매달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실수다. 이웃을 공격하는 전진기지로 쓰이는 기지를 내주고, 외부 후원국이 자신들을 순종적 고객처럼 대하는데도 국가안보와 경제의 미래를 거기에 묶어두면, 끝없는 의존과 반복되는 굴욕만 남는다.
셋째, 이번 전쟁은 이웃들이 직시해야 할 정치·법적 현실을 만들었다
“이란 문명을 말살”하려는 침략이 발사되고 병참 지원까지 이뤄진 미국 기지는, 더 이상 무고하고 중립적인 ‘안보 협력’으로 볼 수 없다. 지난 두 차례 전쟁과 그 이전의 적대 행위가 보여주듯, 이란에게는 실존적 위협이다. 이 기지들은 주둔국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주둔국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란을 해치기 위해 세워졌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런 시설을 계속 품는 아랍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한 역내 군사화를 스스로 키우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그들 경제에도 치명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다.
넷째, 역내에서 커지는 이스라엘의 존재는 갈등만 키웠고, 앞으로도 불안과 주권 훼손만 낳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땅만 점령하는 것이 아니다. 로비와 압력단체의 정교한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 시스템 안으로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주권은 안에서부터 비워지고, 국가의 의사결정은 이스라엘의 이해관계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런 패턴을 보려면, 미국에서 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AIPAC)가 권력의 핵심 지렛대를 어떻게 움켜쥐었는지, 유럽 여러 수도에서 비슷한 조직들이 어떻게 같은 모델을 복제했는지 살펴보면 된다. 미국 안에서 “이스라엘이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단 한 번도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도, 미국의 피와 재정을 대가로 자신의 요구를 밀어붙인다”는 분노가 커지는 현실을 봐도 알 수 있다.
텔아비브와의 관계 정상화를 서두른 나라들, 혹은 그 방식을 따라 하려는 나라들은 장기적 자율성을 당장의 ‘성과’와 맞바꿨다. 우리 지역의 시민들은 정부의 대외정책이 갈수록 바깥의 뜻에 끌려가는 모습을 더는 지켜볼 이유가 없다. ‘엡스타인 파일’까지 거론하며 후원국을 압박한다는 말이 나오는 정권이라면, 안보를 그들의 ‘아이언 돔’에 맡기려는 나라들을 더 낫게 대할 리도 없다. 이미 기능을 잃은 ‘아이언 돔’에 안보를 외주 주려는 나라들에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다섯째, 건설적으로 보자면 이란은 이미 포용적 협력의 손길을 내밀어 왔다
호르무즈 평화구상(HOPE), 무슬림 서아시아 대화협회(MWADA), 중동 원자력 연구·발전 네트워크(MENARA) 같은 이란의 과거 제안은, 이웃들과 손잡고 포용적 협력망을 만들려는 진정한 의지를 보여줬다. 워싱턴이 철통같은 안보를 제공해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이런 제안을 외면하거나 깎아내린 것은 역사적 실수였다. 앞으로의 길은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공동 이익에 뿌리 내린 ‘역내 자체 안보 협력체제’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
서아시아(중동)는 막대한 부와 에너지 자원, 오래된 문화, 공통의 종교, 그리고 수세기에 걸친 얽힌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자산을 바탕으로, 물 부족과 기후변화에서 경제 다각화, 기술 발전까지 공동 과제를 외부의 훈계 없이 풀어낼 새로운 역내 협력망을 만들어야 한다. 역내가 만들고 역내를 위해 작동하는 안보 협력 구조는 더 이상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전략적 필수다.
이번 전쟁은 편안한 착각의 시대를 끝냈다. 안보는 돈으로 살 수도, 외주를 줄 수도 없다. 이란의 불안을 키우고 위협을 가하는 방식으로는 그 누구도 안전을 얻을 수 없다. 이 전쟁 이후 현실을 외면할 수 없고, 이란의 불만과 피해 의식을 ‘없던 일’로 덮을 수도 없다. 외부 세력은 이익을 뽑아낼 때만 머물다, 비용이 커지면 떠난다. 그러나 우리는 최후의 날까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란은 가장 사악한 강대국들의 전쟁 기계로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동시에 이 지역의 무슬림 형제자매들과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한다. 이제 남은 질문은, 서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이 지속되는 진실에 맞춰 바뀔 지혜가 있느냐는 것이다. 존중과 품위, 상호 안보와 공동 번영으로 정의되는 미래를 지금 함께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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