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B급 농담으로 무릅을 치고 박장대소를 하는 연예인들이 라디오를 망쳐놓았지만 예전에는 라디오가 참 들을만 했다. 프로그램마다 개성이 넘쳤고, 진행자들은 음악 듣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는 선생님 같았다. 깨알 같이 엽서에 적어 보내온 사연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 같이 순수하고 예쁜 내용들이었을까. 라디오를 녹음해 나만의 트랙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다. 음악이 흐르는 중에 멘트를 넣는 야속한 진행자들 때문에 망치는 경우도 많고, 방송시간이 다 되거나 테이프가 다 되어 도중에 잘리는 일도 다반사. 나중에는 테이프 두께만 봐도 녹음이 가능한 잔여시간을 계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테이프 한개를 완성하면 그걸 돌려듣고 또 돌려듣는 일이 마냥 행복했다. 지금 와서 보면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만, 노고 끝에 얻은 음악들이라 더 소중하게 아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라디오를 듣다가 꼭 마음에 드는 노래는 음반가게로 달려가 용돈으로 구입했다. 음반가게에는 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어떤 걸 먼저 사갈까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은 설레이면서도 늘 골치였고, 선택에서 제외된 음반에게는 다음 번에는 꼭 너를 데려가겠노라 달래주었다. 나는 이제 삼십대 중반의 아저씨가 되었고, 애플과 맥의 열렬한 지지자다. iTunes는 우리에게 음악을 선곡하고 듣고 보관하는 방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iTunes 이전에는 ‘Listen, Record and Mix’였지만 지금은 ‘Mix, Rip and Burn’이다. iTunes에는 파티 셔플 기능도 있고, iPod shuffle 모델도 있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는 즐거움이 셔플의 묘미라면 역시 FM 방송이 제격이다. 그 즐거움을 기억해냈을 즈음에 그리핀 테크놀로지의 radio SHARK(http://www.griffintechnology.com/products/radioshark/)를 발견했다. Record and Mix - 그리핀 radio Shark radio SHARK는 컴퓨터에 연결해 듣는 USB 라디오로, ①Mac/PC에서 라디오를 편리하게 제어할 수 있고 ②고품질의 AAC 파일로 즉시/예약 녹음이 가능하다. ③또 실시간으로 라디오 방송의 버퍼를 확보해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시간을 되돌려 녹음할 수 있도록 타임쉬프트 기능을 제공하며, ④이렇게 만들어진 파일을 자동으로 iTunes로 보내는 것이 장점이다. 녹음한 파일은 AIFF 또는 AAC 포맷으로 저장할 수 있고 샘플률은 192kbps까지 지원한다. 인코딩 품질은 Good, Better, Best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녹음을 시작하면 지느러미 중앙의 푸른 빛이 붉은 빛으로 바뀐다.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색상을 임의로 지정할 수 있고, 라디오 채널 탐색 시 강도를 지정할 수 있다. radio SHARK를 컴퓨터를 경유해 오디오에 연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사운드 품질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컴퓨터 아날로그 단자를 통해 오디오와 연결: 들을만 하지만 역시 오디오용 튜너보다 못하군. 돌아가야겠어. ② 컴퓨터 디지털 단자를 DAC에 연결, DAC에서 오디오로 아날로그 출력: 약간 가늘고 살집이 부족한 소리지만 어지간한 튜너 뺨치는군. 훌륭해. ③ radio SHARK의 아날로그 단자를 오디오에 직접 연결 : 꽤애액. 이건 아니잖아.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과의 조합에서는 어지간한 오디오 전용 튜너에 근접하는 제법 괜찮은 음질을 구현한다. Windows PC의 경우 HDTV나 디지털 방송을 보면 버퍼를 확보하기 위해 라이브 방송과 수 초 이상의 시간 지연이 발생하는데, radio SHARK에서는 0.5초 미만으로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몸통 재질은 기존 iPod이나 iMac에 적용되었던 우유빛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이고 받침은 유광 크롬으로 도금 처리했다. 백상어(radio SHARK)는 단종되었고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 처리 기능이 추가된 먹상어(radio SHARK 2)가 요즘 판매된다. 먹상어도 한 마리 장만해두었는데 아직은 백상어만 쓰고 있다. Mix, Rip and Burn radio SHARK를 사용하면서 종전보다 라디오 방송을 더 많이 듣게 되었다. 튜너와 병행해서 사용하면 하루 종일 방송국을 바꿔가며 아침 방송만 들을 수도 있다. 가령 라이브로는 튜너를 이용해 KBS2 FM을 듣고, 그 사이 radio SHARK에서 MBC FM을 AAC 파일로 저장해서 듣는 식이다. 외출을 하는 경우 미리 예약만 해두면 원하는 방송을 radio SHARK가 저장해서 iTunes로 보내므로 돌아와서 재생목록을 확인하고 저장돼 있는 FM방송을 들으면 된다. 타임쉬프트 기능을 이용하면, 좋아하는 곡이 나왔을 때 언제든지 미리 정해둔 시간만큼 되돌아가서 처음부터 녹음하는 것이 가능하다. 요즘은 TV에도 달려나오는 새로울 것 없는 기능이지만, 20년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획기적인 기술. 방송을 통째로 녹음해서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있다면, 공짜 소프트웨어인 AudioSlicer(http://audioslicer.sourceforge.net/)를 사용해 추가로 인코딩 없이(원본의 손실없이) 필요한 부분만 잘라서 저장할 수 있다. radio SHARK를 사용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추억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멋진 곡들을 잡아서 트랙을 만들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화가 없으므로 수신상태만 좋다면 기대 이상의 공짜음악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진정한 의미의 무작위 선곡이다! 늘 라디오를 켜 두고 음반가게와 집을 시계추처럼 오가던 다시 오지 않을 내 소년 시절을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