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요리

삼겹살을 끊다

macintoy 2021. 5. 23. 01:25

우리는 지구별에서 삼겹살이 가장 비싼 나라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삼겹살은 저질 부위로 취급되는데, 한마디로 살코기가 별로 없는 기름 덩어리라는 이야기. 한국은 대표적인 삼겹살 수입국으로, 앞다리살과 같은 비인기 부위는 가공식품으로 돌리고도 남아 해외로 수출하는데, 청정국 지위를 잃으면 수출길이 막히기 때문에,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이 돌면 멀쩡한 돼지까지 선제적으로 살처분한다. 삼겹살 선호사상이 빚은 재앙이다. 각 나라별로 시세를 살펴보자.


2020년도 국가별 돼지고기 가격 차이

도매가를 살펴 보면, 우리나라는 삼겹살과 목살이 돼지고기 가격을 주도하고 있다. 다른 부위들은 반값 이하고, 심지어 뒷다리살은 삼겹살의 20% 수준에 팔린다.

미국은 갈비가 비싸고, 패스트푸드 종주국답게 삼겹살(=베이컨) 수요도 제법 있다. 반면 칠레의 경우, 내수용 고기는 기름을 다 제거하는데, 유독 한국 수출용만 기름이 붙은 채로 판다. 축산폐기물까지 함께 사 가는 우리나라가 이들에게는 참 반가운 고객호구이다.

 

유럽으로 가보자. 독일에서 삼겹살은 최하등급의 돼지고기다. 우리나라 음식점에서 독일산과 칠레산 삼겹살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에서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호주 등 세계 10개국 주요도시 소매가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삼겹살은 스페인보다 4.6배 비싸다. 한국은 삼겹살을 사 먹기에 가장 부적합하고, 앞다리살이나 안심 등을 사 먹기에 아주 유리한 나라다.

 

삼겹살을 끊다

스스로 사람인지 육식공룡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던 내가 삼겹살을 끊고 앞다리살로 개종했다. 처음에는 지방이 적으니 건강에는 유익해도 맛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몇 해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이 바뀌었다.

1) 삼겹살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돼지기름에 길들여진 입맛의 영향이 크다.
2) 앞다리살이 삼겹살보다 퍽퍽하게 느껴지는 것은, 삼겹살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조리했기 때문이다.

재료 특성에 맞는 조리방법을 이용하면 앞다리살도 삼겹살 못지않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

1) 두껍게 썬 앞다리살은 팬을 뜨겁게 달군 뒤, 식용유 대신 돼지비계 조각을 녹여 두르고 180도 이상에서 노릇하게 굽는다. 팬 온도가 떨어져 수분이 지글거리면 맛없으니, 센불로 조금씩 구워야 맛있다.
2) 숯불구이 바베큐도 기름이 흘러내리지 않아, 의문의 불 쇼도 줄어들고 인체에 유해한 벤조피렌(Benzopyrene)이 적게 형성되어 이롭다.
3) 얇게 썬 불고기감은 팬을 달구고 종이호일 위에 올려 조금씩 노릇하게 구우면, 대패삼겹살보다 건강하고 차돌박이보다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지방 맛을 멀리하고 살코기 맛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백미밥에서 잡곡밥이나 현미밥으로 전향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퍽퍽하고 거칠게 느껴지지만, 적응기를 거쳐 익숙해지고 나면 백미밥이 밋밋하고 싱겁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삼겹살을 추앙하는 모든 지구인들에게 돼지앞다리살로의 개종을 제안하는 바이다.

댓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글 보관함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