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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던 미국에서 자본가들이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장식하고 100달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동안,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을 일하고도 주급으로 고작 78달러를 받았다. 허름한 판잣집에 월세 10~15달러를 내고 나면, 아무리 절약해도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삶이었다. 이처럼 심각한 양극화는 게으름과 근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소수가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부의 분배가 불공정하게 이뤄질 때 발생한다.

 


마침내 5월 1일, 극심한 노동과 저임금에 신음하던 미국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공장의 기계 소음과 망치질은 멈췄고, 굴뚝의 연기도 사라졌다. 이 날은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세상이 멈춘다는 사실을 증명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참가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세상의 주인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총파업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4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했다.

헤이마켓 사건
5월 3일, 시카고 인근의 매코믹 공장에서 무장 경찰이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발포해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희생자 중에는 파업에 참여하던 어린 소녀도 있었다. 다음 날,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평화 집회가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렸다. 그러나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 누군가가 던진 폭탄이 터지고 경찰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배후로 지목해 체포했다. 연방법원은 이들에게 폭동 혐의를 뒤집어씌워 사형을 선고했고, 그 중 5명(1명은 집행 전날 자결)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7년이 지나 그들이 무죄였음이 밝혀졌다.

 

"그렇다. 나는 지금 임금을 받아 먹고 사는 노예에 불과하지만, 이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노예의 주인이 되어 남을 부리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것은 나 자신은 물론 이웃과 동료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만약 인생의 길을 달리 정했다면, 나도 지금쯤 시카고 시내에 호화로운 주택을 마련하고 사치스럽고 안락하게 가족과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며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이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이것이 내 죄다."

"파업 중인 노동자에게 폭탄을 던지라고 지시한 이는 누구인가? 주모자는 바로 독점 자본가들이다.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 폭탄을 던진 자는 8시간 노동제를 분쇄하기 위해 뉴욕에서 파견된 음모자들이었다. 재판장, 우리는 단지 그 더럽고 악랄한 음모의 희생자일 뿐이다."

- 사형 당한 노동운동 지도자 파슨즈의 최후 진술 중

노동절
뜨거웠던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 쟁취"를 외치며 투쟁했던 사람들을 기억하자. 민이 세상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그 지위를 되찾기 위해,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세계노동절이 제정되었다. 이듬해인 1890년 5월 1일, 세계 각국에서 노동절 행사가 처음으로 열렸다. 그날 이후 노동절은 전 세계 민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이 되었으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와 함께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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