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광화문광장에서 '히틀러 만세'나 '천황 만세' 혹은 '난 옴진리교가 좋아. 우쭈쭈'라고 외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결론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주한미군 물러가라. 연방제로 통일하자' '미국은 내정간섭 중단하라'라고 외치면, 득달같이 경찰이 나타나 매처럼 당신을 채갈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라고 주장하면 자칫 기소되는데, 얄짤 없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법원에서는 옳은 말이라도 북의 주장과 같으면 위법하다고 판단한다. '친일파 만만세' 혹은 '미국의 핵으로 평양을 궤멸시켜 주세요'를 외치다 잡혀간 사람은 없으니 마이 이상한 세상이다.

MIT에서 부교수(30세), 종신교수(33세), 석좌교수(38세)를 거쳐, 48세에 Institute Professor(독립적인 학문기관으로 대우하는 교수)가 된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는 자신의 저서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통해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쓴 미국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 책은 제국의 외교정책 뼈대가 어떻게 수립되고 작동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설서이자, 국제 경찰을 자처하면서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기만 하면 악명 높은 독재자는 물론 나찌와도 협력해 어떻게 양민들을 짓밟았는지,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파나마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수많은 학살이 어떤 맥락 하에 자행되었는지 폭로한 세계 양심을 대변하는 고발장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우리의 삶과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주 4.3 학살은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 승리 후 전리품으로 챙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1980년 광주에서 자행된 전두환의 살육전도 평시작전권을 가진 미군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했으며, 당시 한반도에 항공모함을 급파한 것도 비극을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친미 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적 조치였다. 대학 시절 읽은 기억에 딸내미에게 선물하려고 구입했는데 요즘 다시 들여다 본다.

맨 마지막 장은 이렇게 끝난다.

'쇠사슬에 묶인 채 즐기는' 평화와 안식을 위해 자유와 정의를 버린 유럽인에 대해 루소가 했던 경멸적인 비평이 늘 떠올랐다. "자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노예답지 않다." 이 말을 한낱 문장이라고 치부한다면, 세계가 실제로는 어떤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2008년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국방부가 금지한 책들은 대체로 아주 괜찮은 것 같다. 국방부의 이 볼온함을 어찌 해야 할까?

댓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글 보관함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