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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으로 보일까 홀로 장 보는 것조차 신경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경기 중에 물컵을 낚아채는 마라톤 선수의 스피드와, 살 건지 안 살 건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로 마트 시식 코너를 뛰어다니며 한 끼를 때울 정도로 뻔뻔해졌고, 두부 코너 아줌마와 눈 인사를 나누며, 밤 9시를 넘기면 하이에나 눈을 하고 신선 제품에 반값 할인 택이 붙기를 기다릴 줄도 안다.

신당동 중앙시장을 돌면서 반찬가게 주인장이랑 두어 번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언제나처럼 살 건지 안 살 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안전거리를 두며 실눈을 뜨고 진열대를 염탐하던 중이었다. 마늘장아찌, 무말랭이, 우엉, 깻잎, 메추리알 장조림을 슥슥 골라, "요거 포장해 주세요" 했더니 "만사천원" 하신다. 지갑을 꺼내는데 주인장 아주머니가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자취해?"

자취(自炊)라...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하는 건 맞는데 내가 자취생인가 헷갈리니, 아무 말 못 하고 머뭇거리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동치미 국물 좀 가지고 가. 맛있어." 아주머니는 내 손에 검은 봉지를 쥐여주고 번개처럼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신당동 중앙시장에는 귀신처럼 자취생을 알아보는 반찬가게가 있다. 3팩에 만원 하는 이마트표 반찬보다 절반이나 저렴하고 곱절은 맛있다. 반찬가게 주인 신분은 위장이고 아줌마의 진짜 정체는 천사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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