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대형 마트 폐점 시간에 임박해 신선식품 코너로 달려가 할인 태그가 붙은 식재료를 털어 왔다. 토종닭 2마리가 10,640원, 국내산 돼지 뒷다리살 1.7kg은 6,810원 토종닭 한 마리를 닭볶음탕으로 변환했다. 남은 한 마리는 냉장실에 저장해 보관하다가 백숙으로 만들어 칼국수를 곁들여 먹을 요량이다. 돼지 앞다리살 800g은 양념을 재워 불고기로 숙성시키고 600g으로는 파뿌리, 월계수 잎, 통후추, 된장, 소금, 국간장, 소주 약간을 넣어 수육으로 변환하고 300g은 깍둑 썰어 묵은지, 두부, 멸치가루, 다시마, 보리새우, 국간장, 들기름, 파를 혼합해 김치찌개를 끓였다. 이건 내일부터 먹을 건데 카레도 그렇지만 하루 지나면 더 맛있다. 고기 양이 많은 것 같아도 삶으면 이렇게 부피가 줄어든다..
2008년 사진전을 다녀온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이번엔 1932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매그넘 작가들의 시선으로 파리를 기록한 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2019년 9월 25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2020년 2월 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매그넘의 글로벌 전시 디렉터인 안드레아 호저는 기획 의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사진으로 파리를 모자이크처럼 재구성해 봄으로써 이 도시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전시회에 출품된 사진은 파리가 겪은 지난 90년간의 변화를 돌아보게 해준다. 그러나 매그넘 작가들은 루브르 박물관과 피라미드, 라데팡스 또는 조지 퐁피두 센터와 같은 주요 건물과 기념비들의 모습을 관광엽서처럼 틀에 박힌 모..
날씨가 궂을 때는 전시회 관람이 최고다. 감동은 기본이고 몸으로는 운동을 머리로는 학습이나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다. 특별전에 다녀왔다. 12월 31일까지 무료로 진행되는데 운 좋게 막차를 탔다. 전시 주제는 '칼과 현' 구지가와 삼국유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가야 기원을 담은 파사석탑 가야가 누린 공존의 가치 거대한 유리장에 가락국(금관가야), 아라국(아라가야), 가라국(대가야), 고자국(소가야), 비사벌국(비화가야)의 토기를 구분해 전시하여, 유사점과 차이점을 짚어가며 관람하도록 되어있다. 다채로운 문화를 보여주는 여러 토기들 흙구슬에 새겨진 문양은 수로왕의 탄생 신화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조건으로 촬영을 허용하는데 조명이 암실 수준으로 어둡다. 사진기 감도를 올리고 조..
생활비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만수르 아니어도 누구든 실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추구한다. 캠핑 짐을 트렁크에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리를 살피다 어느 공원 주차장 옆에 자리 잡았다. 주말을 여기서 지내야지. 서울 신당동에서 금요일 17시에 출발해 1시간 걸렸으니 접근성도 용이하고, 덤으로 깨끗한 공중화장실도 있다. 좁은 텐트라 거실 인테리어는 촘촘히 일렬로 두 평만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왼쪽부터 가스레인지 식기보관통 식수대 냉장고 무선 인터넷과 블루투스 스피커, 노트북이 제공되는 침실. 야전 침대 위에 백패킹용 에어 매트리스를 올리고 뽀송뽀송한 이불을 깔고 경량 덕다운 담요를 덮는다. 난방과 함께 서큘레이터로 공기를 순환시키기 때문에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실내 온도는 25도..
전국 곳곳에 이름난 술이 많지만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어 마이 아쉽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시라. 택배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점찍어 둔 막걸리는 라벨에서 제조사 번호를 찾아 전화로 구입할 수 있는데, 가령 1.7리터 들이 원주 치악산막걸리 12병이 택배비 포함 단돈 27,000원. 술값을 벌기 위해 돈을 더 벌지 않아도 된다. 배송 도중 흔들리거나 눌리기도 하고, 내부 압력이 증가해 가스가 배출되면서 새어 나온 막걸리가 용기에 묻기 마련인데, 이대로 냉장고에 넣으면 용기 겉면에 묻은 술이 건조되어 하얀 가루로 떨어지기 때문에 닦아서 넣는 것이 좋다. 이때 라벨까지 함께 벗겨내면 재활용 공정에 큰 도움이 된다. 분리수거 때마다 제거하려면 귀찮은데, 식재료 손질 하듯 싹 밀고 나니 의문의 환경 운동. 결벽..
조나단 시걸(소설 '갈매기의 꿈'의 원제) 발간 이후 계속 받은 질문은 "리처드, 다음엔 무엇을 쓸 건가요? '갈매기의 꿈' 차기작 말이에요."였다.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내 책 속에 담겨 있으니, 나는 앞으로 한 마디도 더 쓸 내용이 없노라고 답했다. 차가 압류되는 등 한동안 시달렸던 빈곤 때문에 한밤중까지 글을 쓰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낡은 경비행기를 타고 미국 중서부에 넓게 펼쳐진 목초지로 날아가는데, 3달러씩 받고 승객들을 실어 나르면서 오랜 긴장감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던 것이다. 사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떠오른 생각에 등을 돌릴 수 있고 그 문을 열지 않을 수만 있다면, 결코 펜을 쥐지..
광화문광장에서 '히틀러 만세'나 '천황 만세' 혹은 '난 옴진리교가 좋아. 우쭈쭈'라고 외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결론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주한미군 물러가라. 연방제로 통일하자' '미국은 내정간섭 중단하라'라고 외치면, 득달같이 경찰이 나타나 매처럼 당신을 채갈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라고 주장하면 자칫 기소되는데, 얄짤 없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법원에서는 옳은 말이라도 북의 주장과 같으면 위법하다고 판단한다. '친일파 만만세' 혹은 '미국의 핵으로 평양을 궤멸시켜 주세요'를 외치다 잡혀간 사람은 없으니 마이 이상한 세상이다. MIT에서 부교수(30세), 종신교수(33세), 석좌교수(38세)를 거쳐, 48세에 Institute Pro..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이주영은 2019년이 되어서야 첫 앨범을 발매하고, 2020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후보로 선정된다. 늘 0(영)의 상태에서 살아왔고, 통장 잔액도 늘 0이었으며, 그렇다고 마이너스는 아니라서 스스로 평온하다는 그는 소규모 공연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온 인디 뮤지션으로, 평소 즉흥적으로 쓴 가사와 곡을 모아, 수정 없이 단숨에 녹음해 25년 만의 첫 앨범을 완성했다. 선정주의에 물들고 상업주의에 흥청대는 한국 대중음악 속에서 그의 가난한 음악이 군계일학처럼 빛나고 있다. 이별의 아픔을 독백하는 보컬을 따라 무용수처럼 춤을 추는 피아노와 일렉 기타 선율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을 소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