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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음반 심의는 1968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에서 시작했는데, 1975년 6월 대통령 긴급조치 9호로 강화되면서 온갖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보물같은 음반들을 금지곡으로 묶던 시절이 있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라든가 앨리스 쿠퍼의 음반들,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신중현의 <미인>, 김민기의 <아침이슬>, 심지어 <독도는 우리 땅>도 들으면 안 되는 '나쁜 노래'였다.

금지곡들은 검열당국의 눈을 피해 몰래 원판을 들여오거나 해적판으로 유통되었는데 이를 빽판이라고 불렀다. FM 라디오와 레코드방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시절, 금지된 명곡들을 숨어서라도 듣고 싶은 자유인들에게 빽판은 해방구와도 같았고, 유통의 메카를 자임했던 곳이 황학동 장안레코드다. 국민학생 때부터 매일 라디오를 끼고 살며 테이프와 LP판을 모아 애늙은이 소리를 듣던 유년시절의 내 참새방앗간인데, 손님이 찾으면 매장 구석에서 슬그머니 꺼내오는 판도라 상자에는 금지된 보물들로 가득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드문드문 들렀어도 주인장께서 알아보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밖에서 눈이 마주치자 '어어?' 하신다. 서로 속으로 어우 저 양반 나이 먹었네 하면서 반갑게 해후하고 안부를 나눈다.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면 아는 사람들만 찾는 LP 저장고가 있다. 먼지가 많으니 더러워진 손을 닦을 물 티슈도 준비하고, 혹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조심하시라. 미개봉 음반은 비싸지만 낡은 중고 LP는 장당 3천원이니 사볼 만한데, 이날은 가요 LP를 뒤졌다. 아날로그에 입문하는 지인 음반을 골라주고 흠집은 없는지 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 지인은 21장 나는 8장을 사 왔다.

 

김광민 - 지구에서 온 편지
집 어딘가에 CD가 있을 텐데 찾지 못하고 3천원의 유혹에 흔들려 구입했다. 미개봉 카세트테이프를 오픈마켓에서 5천원에 파는 것도 뒤늦게 알았는데 허벅지를 찌르며 참고 산다. ~ __~

김수철 - 작은 거인
못다핀 꽃한송이와 별리 등이 수록된 명반으로, 상태가 별로라 이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장 보러 종종 들르는 장충마트 바로 앞 장충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는데, 불쑥 찾아가 반달눈을 하고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으셨냐 물어보고 싶다.

 

김성호의 회상

90년대 연인들은 2천년대 기준으로 보면 죄다 '쿨하지' 못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음.

여명의 눈동자 OST
대치: 여옥이 아직 옆에 있지?
하림: 응, 그래
대치: 이제 쉬고 싶군.
바람: 휘이이이이~
대치: 꼴까닥

 

이문세 4집, 5집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굿바이, 그녀의 웃음 소리뿐 등 버릴 곡이 하나도 없으니, 4집은 한마디로 잘 키운 한우 같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2집
졸업사진 일부를 하얗게 잘라낸 자켓 이미지는 민주화 운동에서 숨져간 분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다. 1집에서 알 듯 모를 듯 희미하게 넣었던 것을 2집에 와서야 온전한 사진으로 넣었으니, 87년 6월 항쟁 이후 인민들의 민중들의 자주적 진출이 확대되면서 예술의 자유도 확장된 시대의 증거로 남았다. 참여한 음악인 목록에서 김광석, 김영동, 안치환 등 반가운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 절 취 선 ---

국민학생 때부터 테이프와 LP를 어마무시하게 모았다가 음악 취향도 바뀌고 이사짐 감당이 되지 않아 처분하고 LP 300장 정도만 남겼는데, CD는 모조리 파일로 변환해 아이튠즈에 담아 편리하게는 들어도, 자켓에서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 음미하며 듣는 맛에는 한참 못 미친다. 옷이나 신발은 대충 걸치고 다니며 스님처럼 살아도, 집은 온갖 스피커와 앰프, 튜너로 아주 오디오 천지다. 장비는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지만, 소년 시절 들었던 낡은 5석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에로이카 오디오의 감동이 더 강렬했으니, 음악은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들어야 좋은 것인가 보다. 그래도 모든 지구인들에게 적당한 고품질의 이어폰과 블루투스 스피커, 그리고 라디오는 권하고 싶다.

 

이상으로 약쟁이가 마약 권하는 소리를 마칩니다. ¯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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