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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와 을지로 골목에는 중구청 추산 5,400여 개의 인쇄업체들이 모여있고, 디자인, 원단, 출력, 제본, 재단, 톰슨 프레스, 라미네이팅, 실크 스크린, 접착, 디지털 인쇄, 레터 프레스, 레이저 가공 등 무려 15,000여 개의 관련 업체가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우리나라 인쇄문화산업의 중추를 담당한다. 서울시와 한국무형유산진흥센터에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울시 미래유산 보존사업에 충무로 인쇄골목이 선정되면서, 충무로를 상징하는 기획물을 제작할 4인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어쩌다' 참여했다. 이 게시물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인쇄물 가장자리에는 재단선, 도련선, 맞춰찍기, 색상 막대, 페이지 정보 등을 담은 CMYK Printing mark가 인쇄된다. 이를 토대로 컬러를 맞추고 생산 공정을 진행하는데, 모든 가공이 완료되면 잘려나가기 때문에 최종 완성본에는 포함되지 않고, <수학의 정석>이나 성경, 교과서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이 인쇄되는 콘텐츠지만 그 존재감은 희미하다. 매일 버려지는 이 표식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충무로 인쇄골목 노동자들을 닮았다.

나는 충무로 인쇄골목을 대표하며 오랫동안 기억할 미래유산으로 CMYK printing mark를 선정했다. 이 인쇄물에서만큼은 당당한 주인공이고 잘려 나가거나 버려지지도 않는다. 출판문화산업의 주역이면서도 소외되어온 인쇄노동자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이기도 하다.

사이언(Cyan) 마젠타(Magenta) 노랑(Yellow) 검정(baclK)은 염료의 4원색으로 합칠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감산-혼합이라 부른다. 이 4가지 염료의 세기를 조절하고 섞어 총천연색 컬러 인쇄물이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CMYK 4색 원판이 사용되는데 PET 재질 투명 플라스틱에 색상별로 인쇄된 CMYK printing mark를 겹쳐 보면서 인쇄 구현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인쇄물 가장자리에 찔리지 않도록 종이와 플라스틱의 모든 가장자리를 둥글게 절단했는데, 사실상의 국가 산업단지인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일하는 인쇄노동자들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은 것이다. 뒷면에는 작가 해설을 적었다.

인쇄가 구현되는 원리를 이해하고 공정 하나하나에 깃들인 인쇄인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조립하지 않고 비닐 봉지에 넣어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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