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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음주 섭외의 심리전

macintoy 2020. 5. 27. 18:20

지금은 규칙적인 반주와 습관적인 혼술을 끊고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무시무시한 먹부림과 더불어 연쇄음주마로 이름을 떨친 시절이 있었다. 나에 대한 친구 부인들의 평판도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는데 '저 인간이랑 마시기만 하면 남편이 술로 떡이 되어 들어온다'며 싫어하는 그룹과 '저 인간은 유흥업소는 일절 모르고 오직 술만 마시기 때문에 늦게 귀가해도 안심된다'는 그룹이 있다. 여자사람친구의 외국인 남편 Joe는 나를 희대의 party animal이라 불렀고, 아이는 어릴 적에 술을 보면 '아빠물 아빠물'이라 했다. 왁자지껄한 술집에서 내가 잔을 높이 들어 '의식이 있는 한~'이라고 외치고 전원이 건배사를 제창하며 절도 있게 원샷-원킬하는 모습은 세기말적 퇴폐와 환희 그리고 의리를 다 합친 그 무엇이었다.

평소 바른생활을 추구하다가도 아이가 전처를 만나러 가거나 수련회 활동 등으로 고삐가 풀리는 날은 어김없이 party animal로 변신, 지인들을 술구덩이로 몰아가는데 이때 꼬시는 공격수와 나오지 않으려고 버티는 수비수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다. 이른바 음주 섭외의 심리전이다. 텔레그램 메신저에 대화 기록이 남아있구나. 충무로에서 수제양복점을 운영하는 라프는 간에 재능이 있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금주를 선언했는데, 내가 술 마시러 신당동으로 오라고 꼬시는 중이다.

나는 그동안 극악무도한 연쇄음주마로 살며 무고한 포유류들을 수없이 조류로 만들기도 하고, 뉴럴라이저도 없이 남의 기억을 함부로 삭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손 씻고 새 사람이 되었다. 음주 섭외의 추억이여 잘 있거라. 치열했던 심리전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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