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로 발목이 잡혀 비밀 아지트에 도착한 시간은 해 질 무렵, 머리에 랜턴을 달고 집을 짓고 나니 깜깜한 밤이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 한번 거른 끼니는 평생 다시 찾아 먹을 수 없다는데 에잇~ 전날 밤 이마트 할인코너에서 연어+참치를 반값에 털어 왔다. 회는 아침, 초밥은 점심이야. 넌 저녁밥 쫄깃한 빨판만 모아서 잘라 먹으면 몸서리치게 맛있겠지? 주방장 특선이라며 웃고 손뼉 치고 좋아했으나, 볼수록 이상하고 옳지 않은 느낌 왔구나. 왔어. 환공포증 이번엔 망원렌즈를 챙겨왔다. 안구 정화를 위해 달을 봐야지. 별도 본다. 가운데 동작 그만~ 누구냐. 너 성운이 망극한 밤 --- 절취선 --- 아침 밤사이 서리가 내려 겨울왕국이 따로 없다. 텐트 안은 난로로 난방을 하고 천장에 서큘레이..
덩어리째 싸게 떼어 온 돼지 앞다리살은 도톰하게 잘라서 진공 포장기로 소분 숯불에 구우면 몸서리치게 맛있겠지. 시에라 컵은 미국에서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뮤어(John Muir)가 이끄는 시에라 클럽에서 자연보호 기금을 모으기 위해, 수납이 용이하고 야외에서 열원에 직접 올려 가열하거나 조리할 수 있는 컵을 고안해 판매한 것에서 유래했다. 겹겹이 포개져 수납이 용이하고 손잡이는 고리에 걸 수 있으며 밥이든 국이든 반찬이든 담을 수 있고 술잔이나 물그릇으로도 기능하니 참 요긴하다. 눈금자가 표시된 것은 개량컵으로도 쓸 수 있다. 참고로 일반 종이컵 용량은 180ml 새 식구를 들였다. 이 아이는 알콜 담당 샤방한 가죽 손잡이도 달아주었다. 우리 공화국에 온 걸 환영해. 이런저런 잡무를 분주히 마감..
날계란은 싸지만 구운계란은 비싸다. 계란을 구운계란으로 변환하는 것은 가사노동을 통해 저장성과 상품성을 높이는 낮은 단계의 연금술이다. 삶는 것보다 찌는 것이 유리하다. 증기로 익히면 조리시간이 단축되고 덜 깨지며 에너지까지 절약된다. 끓기 시작해 10분이면 반숙, 15분이면 완숙, 더 삶으면 흰자의 황과 노른자의 철 성분이 결합해 황화철이 되어 녹색으로 바뀐다. 계란이 완전히 익었는지는 바닥에 놓고 돌려 보면 알 수 있다. 잘 익은 놈은 오뚜기처럼 서서 돌고, 덜 익은 놈은 천방지축으로 땡깡을 부리며 굴러다닌다. 전기압력밥솥에서 고온 + 고압으로 찌면 집에서도 맥반석 계란을 만들 수 있다. - 냉장고에서 꺼낸 계란을 깨끗이 씻는다. 껍질 표면의 닭 응가가 밥솥 구석구석을 야무지게 오염시키는 참사를 막을..
이번 여행을 위해 준비한 샤방한 철가방 펼치고 조립하면 1인용 그릴로 변신한다. 여럿이 사용하면 극심한 먹이 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 고기는 참나무 맛~ 그릴이 작아서 장작을 잘개 쪼개야 한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도끼랑 깔맞춤 혼자 왔으니까 대충 차려 먹자. 남의 살 굽기 미리 손질해 데쳐놓은 오징어도 굽는다. 타르타르 소스, 초장, 머스터드 3가지 맛~ 샤방했던 철가방이 점차 상남자로 변모하는 중 초밥용으로 초대리를 먹인 밥은 김가루와 깨, 참기름을 합치고 동글동글 말면 주먹밥으로 변신 나는 어쩌면 전설의 닭발집 사장인데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지도 몰라. ~ _~ 불타는 주꾸미 추가 일식 어묵탕 삼선해물볶음짬뽕과 로씨야 보드카 보냉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녹진녹진해진 피자는 냄비 바닥에 망을 깔고 ..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신비로운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아래가 뾰족 튀어나온 구름을 보면서 '말 풍선'이 떠올랐다. 너 참 특이하게 생겼구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 토네이도였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의 바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강하게 불 때 대기가 뒤틀리면서 강한 회전이 발생하는데, 해수면에서 막 솟구쳐서 구름 위로 올라간다. 자연산 광어는 하늘을 날았을까? 용오름(토네이도) 줄기를 따라 해수면으로 내려가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오 망원렌즈 가져오는 건데. 염불해야 하는데 목탁이 없구나. 이렇게 하면 잘 보인다. 토네이도 경로를 따라 해수면의 물보라도 함께 이동한다. 빠른 속도로 왼쪽으로 지나가는데, 텐트를 향해 곧장 왔다면 어쩌면 이게 내 마지막 사진 ¯ࡇ¯; 저기서 반대쪽을 향..
잎새주를 물고 야전침대에 누워 석양을 감상하는데 해변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돈 주고 폭죽 사 본 적은 없어도 공짜 불꽃 놀이는 좋구나. 짐을 줄인다고 망원렌즈까지 놓고 온 것이 후회된다. 24-70mm 규격의 표준 줌렌즈로 담은 자은도 해변 불꽃놀이의 추억이다. 극장에서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장면 같기도 하고 음 이건 조커? (- ㅂ-) 여기저기서 빵빵 터진다. SF적 감수성도 있다. 엑스 파일? 워메~ 6일간 전라도에 머물면서 동화됨. MIRV(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 미사일) 시험 발사? 해변의 환타지로 시작했다가 의문의 샤머니즘 + 묘하고 불량스러운 분위기로 마무리
해 달 돌고래와 자크 마욜이 없는 그랑블루 풍경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 한반도 자주통일과 평화번영 이뤄져라~ 누구나 일하면 먹고 살 수 있고,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되며, 혹시 노동력을 상실해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별 잎새주를 물고 밤하늘을 기록해야지. 육안으로 관측하는 별의 밀도는 이렇지만 사실은 더 많이 떠있다. 셔터 개방 시간을 늘려 빛을 모으면 숨어있는 별들을 더 찾아낼 수 있다. 수십 억년을 별의 속도로 달려온 빛과 만난다. 마침 지나가는 비행기가 우측 하단에 # 형태의 궤적으로 찍혔다. 셔터를 4초간 개방했으니까 항공기 위치를 알리는 표시등의 점멸 주기는 1초 :-) 15초를 노출해 텐트 위에서 하늘거리던 해송과 함께 우주를 담았다. 자은도 여행에서 너도 기억해줄게. 벗..
서울에서 쉬지 않고 4시간 반을 달려 신안군 자은도에 도착했다. 천사대교가 작년에 개통되어 배 없이도 갈 수 있다. 이제 현지 정보를 수집할 차례, 주유소에서 등유를 채우며 멋진 해변이 어디 있냐고 주인장에게 물었다. '여기 다 좋지.' 슈퍼에서 돼지고기와 잎새주를 사면서 신비로운 해변을 아시냐 물었는데, 계산원이 관광지도를 건네주며 말한다. '둔장해변으로 가세요.' 쏜살같이 달려갔으나 찾을 수 없었다. 믿었던 카카오 네비는 엉뚱한 장소를 안내하고 3G 신호 감도마저 약해 스마트폰 검색도 어려웠다. 차에 달린 네비게이터 켤 생각을 못함. 헤맴을 거듭한 끝에 포기하고 관광지도에 큼직하게 인쇄된 백길해변으로 향했으나, 유원지에서 흔히 보는 평상이 점령한 그저그런 해수욕장이다. 해는 저물어가고 마음은 조급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