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는 금호동에 나는 신당동에 산다. 서로 알고 지낸 지 12년쯤 되었다. 누군가에게 날 소개할 때면 꼭 나를 '아랫동네에 사는 친구'라 말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내가 아랫동네에 사는 게 아니라 네가 산동네에 사는 것'이라고 바로잡는다. 자기는 윗동네 살고 나는 아랫동네 산다는 프레임, 12년째 같은 수법에 당하고 있다. 사진첩을 들여다보는데, 오호 십 년 전 노래방에서 찍은 사진이다. 내가 여기도 갔구나. 함량 미달이지만 나름 기타리스트로서 음악을 진지하게 임할 때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노래방은 기피하는 편이다. 어쩌다 끌려 들어가면 마이크를 잡는 대신, 구석에 앉아 사진을 찍는 게 더 즐겁다. 영국이가 어쩌면 공옥진 여사의 계보를 잇는 우리 시대 춤꾼은 아니었을까? 이 사진이 굴욕샷인지 예술혼을..
오래 전에 결심했죠. 누군가의 그림자 속에서 살지 않겠다고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난 내가 믿는 대로 살아갈 거예요. 누가 나한테 뭘 빼앗아가든지 간에 내 존엄성 만큼은 가져가지 못하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 바로 내게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이루긴 쉽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 I decided long ago,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 If I fail, if I succeed At least I live as I believe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Because the grea..
"잘생겼다. 잘생겼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저희 000 텔레콤에서는..." 설마 이혼이 인생 목표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가정이 해체되고 가정법원에서 서류를 받아 나오고 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 와중에 시도 때도 없어 걸려오는 스팸 전화로 고통받던 중, 이를 이용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비법을 공개한다. 1)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울릴 때, 칭찬받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 2) '잘생겼다 잘생겼다' 2회 연속으로 칭찬받고 3) '사랑합니다'로 고백을 받는다. 그 직후 전화를 끊는다. (아주 중요. 밑줄 쫙) 4) 자존감이 높아진다. 다시 스팸 전화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통화 종료 버튼을 늦게 눌러, 고객님... 으로 시작하는 멘트를..
잠들지 못하는 길고 긴 불면의 밤,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재미 들인 메이저리그 야구. 여기에 류현진과 추신수 등 한국 선수가 가세하면서 '저 선수 강점이 뭐네, 약점은 뭐네' 분석하고 이리저리 빠져들다가 사인볼을 모으게 되었다. Randy Johnson 랜디 존슨은 통산 303승 166패, 100완투 37완봉, 4135 1/3 이닝 동안 4875개의 탈삼진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208센티의 이 장신 투수는 은퇴 후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휴식과 감동, 멋진 작품이 함께 하는 그의 노년을 기대한다. Nolan Ryan 통산 325승. 올스타전 8번 출장. 통산 5714개의 탈삼진으로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놀란 라이언은 통산 7회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텍사스 레인..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해달라 소원을 빌었지만 나를 간택한 건, 개 고양이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 침을 삼킬 때마다 편도선이 콕콕 찌르듯 아프다. UFC 파이터한테 목만 집중적으로 까이는 기분.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백색 가루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고통을 날려줄 궁극의 painkiller를 내 자신에게 처방했다. 영화에서 보면 작고 가느다란 관으로 코에 흡입하는데 뭐 말도 안 되고, 주사로도 맞는 모양인데 바늘은 참 무섭다. 현실에서는 머그잔에 넣고 물과 혼합한 다음 입 속에서 가글을 반복하는데, 고농도라 마시면 큰일 난다. 암튼 이 백색 가루는 염증을 완화시키는데 효과적이다. 잠을 잘 수도 깨어 있을 수도 없는 불면의 길고 긴 밤, 목이 아프면 외로움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