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어느 날 서대문 친척집에 가다가 엄청난 시위 인파와 전경에 막혀 서울역에서 오도 가도 못하다 걸어서 집까지 돌아온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국민학생이었는데 하늘은 매캐한 최루탄 연기로 바닥은 깨진 돌멩이들로 가득 찬 종로를 지나 동대문을 거쳐 안암동까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어머니 손만 붙잡고 질질 끌려가다시피 걸어 간신히 도착했다. 흑백 TV에서는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고 유언비어가 난무한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되었다. 왜곡된 보도였다. 지금은 광주로 편입된 송정리가 외가여서 어머니가 발을 구르며 걱정했던 장면도 떠오른다. 방학이 되어 외가에 가면 불 끄고 잠이 들 때쯤 '옆집 김씨 아들이 어떻게 죽었다' '군인들이 신문지를 말아 휘두르는데 맞으면 픽픽 쓰러져서 알고 보니 쇠파이프를 감추고..
Smells Like Teen Spirit을 부른 전설 니르바나(nirvana). 얼터너티브록의 전설로 불린다. 그렇다면 그대 노루바나를 아시는가? 불꽃처럼 강렬했으나 팀 명 nirvana(열반)을 따라 결국 열반에 이른 커트 코베인과 달리 노루바나는 부작용이 없는 강력한 우울증 치료제이자 행복 처방이다. 카페인보다 짜릿하니 커피 대신 들어도 좋고 밀린 설거지를 하며 크게 틀어 놓아도 좋다. 볼륨을 최대로 키우고 헤드 뱅잉을 해야 하는데 흥이 오는데 2분 쯤 걸릴 수 있다. 그들이 손짓하는 아스트랄한 세계로 함께 나아가자.
역사를 돌이켜볼 때 우수한 생산수단을 갖췄느냐 여부가 민족의 흥망성쇠를 갈랐다. 가정이라고 사정이 다를까? 효과적인 생산수단을 갖추는 것은 성공한 주부로 살기 위한 선결과제다. 따라서 육절기의 도입은 매우 이유 있다. ¯ࡇ¯;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강 소재의 본체는 견고하며, 주요 부품의 분해와 세척이 용이한 구조로 위생적이고, 7인치 칼날은 다양한 식재료를 용도에 맞게 매끄러운 단면으로 신속하게 잘라낸다. 유려한 곡선과 외장 도색은 드롱기 커피 머신을 연상시키고, 칼날이 지나간 듯 획을 도려낸 제품 로고까지 멋쟁이 풍모를 두루 갖췄다. 이렇게 곱게 자르려면 쉐프의 손이 필요했지만 이젠 나도 할 수 있음. 대형 할인점에서 파는 대용량 생고기도 더 이상 구입을 망설이지 않겠어. 돼지앞다리살 지방은 따로 발라..
코펠은 야외에서 밥을 지어 먹을 때 사용하는 조립식 취사도구로, 독일말 코허(Kocher, 조리도구 또는 요리)에서 비롯되었다. 영미권의 Cooker와 같은 말로 일본에서는 곳헤루(コッヘル)로 불리다가 우리나라에 와서 코펠로 굳어진 것으로 본다. 가정용 취사도구와 달리 가볍고 차곡차곡 포개 수납되어 부피를 조금 차지하는 것이 코펠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콜맨 스노우피크 스탠리 MSR 등 쟁쟁한 실력가들이 즐비한 아웃도어 용품 시장에서, 국산 '백마'가 경량 코펠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품목과 구성이 4차원 수준으로 복잡해 이름만 봐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왕초 언니 밥통 왕초 밥통 JGR 언니 밥통 왕초 언니 밸브 밥통 JGR 삼겹살 불판 왕초 ..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제시한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인 E = MC²에 의하면 에너지와 물질은 상호 변환될 수 있다.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시간은 천천히 흐르며, 무게로만 여겨졌던 중력도 실은 시공간이 휘어 생기는 현상이란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따라오다가도 양자물리학 영역에 들어서면 흥미를 잃고 정신줄을 놓기 십상이다. 양자물리학은 그만큼 모호하고 복잡하기로 악명 높다. 양자론은 원자 세계를 기술하는 이론으로 전자와 양성자, 광자, 그 밖의 다른 입자들로 된 미시 세계를 규명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과생들은 고등학교에서 원자 구조를 배울 때 맛보기 시식을 한 적이 있다. 전자는 양성자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구름처럼 두리뭉실하게 분포하며, 전자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
Parisienne Walkways, Still Got the Blues, Spanish Guitar와 같은 명곡을 우리에게 남긴 아일랜드 출신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Robert William Gary Moore)는 Thin Lizzy의 보컬 및 베이시스트였던 필 리놋(Phil Lynott)과 절친 사이로 각별했고, 새가 우는 듯한 주법으로 유명한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Roy Buchanan)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으며 깊이 교류했다. 필 리놋이 약물중독으로 로이 부캐넌은 자살로 각각 사망하자, 홀로 남은 게리 무어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열여덟 번째 앨범에 로이 부캐넌의 명곡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을 수록해 떠난 이들을 추모한다. 그의 깁슨 헤리티지 기타는 쉰 목소리로..
오랜 세월 기와를 한 장씩 쌓아 올렸을 자리에는 이제 기와 모양의 연질 플라스틱 패널이 올라간다. 그러나 백년이 흘러도 건물을 완성시키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의 땀이다. 한 줄씩 뻗어가는 지붕을 보며 노동의 값진 의미를 되새긴다. 1920년 근대 여성운동의 선구자 차미리사가 주축이 된 조선여자교육협회에서 야학을 열어 20명의 여성을 가르친 데서 비롯되어 근화여학교가 설립되었다. 1928년 '근화'가 무궁화를 상징한다는 일제의 시비에 따라 교명은 '덕성'으로 변경되는데, 한마디로 '말 잘 들으라'는 뜻이었다. 근화여학교는 이렇게 자기 이름을 잃고 덕성여자실업학교로 바뀌었다가 오늘날의 덕성여자고등학교가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구관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1941년도에 지어졌다. 할머니 세대의 학창 시절 추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