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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넌 지금 돌고 있다 - 이석증

macintoy 2019. 6. 9. 08:42

어느새 3년 전 일. 누워있다 일어나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 '어이구' 하면서 쓰러졌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어지러움이 아니라 마치 거인에게 잡혀 최고 속도로 돌아가는 커다란 세탁기 탈수 코스에 던져지는 느낌인데, 이 미친 회전감은 사람에 따라 수 초에서 1분 이하로 경험하게 되며 나는 10초 정도였다. 

극심한 어지럼증은 첫 증상이 나타나고 하루에 몇 번씩 발작적으로 찾아온다. 일단 시작되면 눈을 감고 이를 악물며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그 짧은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지고, 멀쩡하던 컨디션이 순식간에 무너져 심지어 구토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에 3~4번 이상 증상을 경험하면 멘붕에 빠진다. 하루 종일 배멀미에 시달리는 셈이고 언제 어디서 쓰러질지 모르니 불안 + 무력감을 느낀다. 들 보기엔 멀쩡하다 갑자기 쓰러지는데 본인은 십여 초동안 황천길 다녀오는 경험이다. 혹시 옆에 이석증을 앓는 사람이 있으면 쓰러질 때 옆에서 손을 잡아주거나 안아주자. 그 짧은 시간이 무섭고 외롭다.

처음엔 원인을 모르다가 자세를 크게 바꿀 때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인데, 이때부터 눕기도 일어나기도 테이블 밑에 떨어진 뭔가를 줍기도 무서워진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쓰러져 머리를 부딪히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머리도 서서 감게 된다. 머리를 최대한 천천히 슬로우 비디오로 움직이려 애쓰는데 그래도 올 건 온다. - _- 운전 중에 사이드 미러를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는 정도는 괜찮지만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려 줍는다면 큰일 날 수 있겠다. 고 김주혁씨가 갑자기 차량 통제 능력을 상실하고 교통 사고로 사망한 원인이 혹시 이석증은 아니었을까 의심도 해본다.

미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이석증의 다른 이름은 '양성 자세 현훈' 또는 '양성 돌발성 자세 현훈증'인데, 이석증 증상이 의심되거나 고생하는 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정보를 정리해보았다. 

 


이석증 또는 양성 돌발성 자세 현훈증(
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
한 마디로 귀에 들어있는 '중력 센서' 고장이다. 몸이 돌고 있지 않은데 센서는 '넌 마이 돌고 있다' 하고 신호를 보내는 병으로, 생물 시간에 배운 우리 몸의 평형을 유지해주는 전정기관, 즉 세반고리반에 발생한 결석이 돌아다니며 센서를 교란해 유발되는 어지럼증이다.

왜 생기나요?
속 시원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머리를 팍 때리거나, 스트레스, 과로, 노화, 감염 등이 원인일 수 있다. 싱글대디라면 뭐 다 설명된다. - _-

진단
이석증 환자는 문제가 있는 쪽으로 머리를 크게 움직이면 안구가 심하게 떨린다. 이비인후과에 가면 의사가 '머리에 힘 빼세요' 라고 말하면서 이리저리 굴리다가 멈추는데, 그때 안진(nytagmus, 안구가 가만히 있어도 떨려서 초점을 유지할 수 없는 증상)이 발생하면 '빙고, 이석증입니다' 라고 판정한다.

치료
반고리관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결석 입자를 원위치로 되돌리기 위해 에플리(Epley)법이나 바베큐법 등 물리치료를 실시한다. 구슬 미로 장난감처럼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입자 위치를 옮기는 원리인데, 반고리반 3개 중 어디에 탈이 났는지에 따라 물리 치료법이 다르다. 
https://blog.naver.com/eejsung/220362553310

경과
당시 바쁘기도 하고 평소 병원 가는 것을 귀찮아 하고, 주사 맞는 것을 끔찍히 싫어해서 어영부영 몇일을 보내면서 주말이 되어 응급실 가기도 뭐한 상황이 되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니 이석증이 맞는 것 같아 셀프로 에플리(Epley)법을 실시했다. 이 운동을 하면 바로 어지럼증이 나타나 아주 괴롭다. 세탁기 탈수통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니 지독한 사람만이 스스로 할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으으으' 하면서 독하게 며칠 하니 증상이 점차 개선되더니 거의 사라졌다. 월요일 이비인후과에 가서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다 의사한테 이야기해줬더니 그냥 웃는다. 

일주일간의 악몽은 그렇게 과거의 일이 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 재발하지 않았다. 쥐 발에 소 잡은 식으로 엉겁결에 나았지만 내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가 있고 극심한 어지럼증을 경험하면 당연히 병원을 찾아야 한다. 쌩판 듣도 보도 못한 말도 안되는 어지럼증은 이석증이 원인일 수 있다.

중력 센서 이상으로 고통받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의 정과 동지적 연대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 전인권님이 부른다. 돌고 돌고 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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