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상

바퀴벌레 공포증

macintoy 2019. 4. 25. 00:50

가스레인지 후드가 고장나 방치된지도 2년이 지났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데 남을 불러 고치자니 민망하고 직접 하기는 또 귀찮았던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 최저가로 주문하니 불과 하루 만에 도착. 설치부터 감격의 시운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떼어낸 고물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려다 지속가능한 지구와 고철로 생계를 꾸려나갈 고단한 이웃을 위해 분리수거하기로 했다.

전동 공구로 경쾌하게 제거되는 나사들, 플라스틱과 금속, 기타 전선 뭉치 등으로 나누는 기분이 상쾌하다. 역시 남자는 공구!

 

이때였다. 장수하늘소만 한 죽은 바퀴벌레가 나왔다. 워어~ 하늘이 노래지고 심장이 무섭게 뛴다. 바퀴는 참 무섭게 생겼구나. 나랑은 얼마나 같이 살았을까? 복근도 있네. 헬스했나? 술렁이는 평정심을 붙들어 매고 끔찍한 마음을 누르며 1회용 비닐장갑과 휴지로 치우고 결연한 심정으로 공구를 다시 들었다. 포비아는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을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마주쳐야 한다.

 

금속 덮개를 제거하고 케이스를 들어 올리자 평정심이 다시 무섭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번엔 여섯 마리, 매미급이다. 전원 무섭게 생긴 게 인상부터가 범상치 않고 반 토막 나있는 녀석도 있구나. 우리 집 가스레인지 후드는 비밀의 바퀴 무덤 터였단 말인가? 하나씩 조심스레 떼어내려는데 눌어붙은 기름때가 나또처럼 쩍쩍 늘어나면서 입체 레이어로 분리된다.

 

"안녕히 계세요. 장 선생님" 

평정심이 더는 참지 못하고 줄행랑을 놓는다. 이야아~ 저놈 잡아라.

 

나이를 먹어도 바퀴벌레는 무섭다. 

심리 치료받아야 하나.

 

댓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글 보관함
Total
Today
Yesterday